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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황금과 돌 / 황현산

등록 2012-03-09 19:11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다시 한 번 생각하라.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라.
나라를 사막으로 만들려는가
제주도에 구럼비라는 나무가 있다고 한다. 지금 폭파하느냐 마느냐 한참 논란중인 강정마을 해안의 바위와 이름이 같다. 구럼비가 제주의 바위틈 어디에나 자생하는 관목이어서 해안을 둘러싼 모든 바위가 다 구럼비바위라고 할 수 있는데,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존가치도 별로 없는 문제의 바위를 구럼비바위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러 대중을 현혹하고 있다는 뜻을 담아, 기지건설 당국자가 쓴 글이 인터넷에 현재 떠돌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벼락 맞을 소리라며 화를 낸다. 제주 여기저기에 구럼비나무는 많았어도 그런 지명을 붙였던 땅은 강정밖에는 없다고 한다. 지명의 유래야 설이 분분하지만 구럼비에 있는 바위가 구럼비바위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고 따져 묻는다.

나는 구럼비나무에 대해 다른 이유로도 관심을 갖는다. 내 고향인 남쪽 섬에 비슷한 이름의 나무가 있다. 잎은 동백나무 잎과 비슷한데 그보다 초라하고, 초여름에 쌀알처럼 작고 하얀, 어린 시절 늘 볼품없다고만 생각했던 꽃이 핀다. 돌 틈에 자리를 잡고 옹색하게 살며 태어날 때부터 줄기가 뒤틀려 있는 이 상록관목을 섬사람들은 ‘구렁뿌리’라고 부른다. 풀과 나무에 정통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이 나무의 표준어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내 설명이 어쭙잖아 번번이 대답을 듣지 못했다.

몇 년 전 고향에 들렀을 때, 이 나무의 사진이라도 찍어 가려고 했더니,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가 이제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산행을 말린다. 7년 가뭄에도 살아남을 것 같던 그 생명력 강한 나무가 어떻게 없어질 수 있단 말인가. “분재한다는 사람들이 다 파갔어. 한 지게 지고 가면 몇 천 원씩 줬지.” 절골산 골짜기를 덮고 있던 이상한 풀들은 씨도 남지 않았다 한다. “석란이라든가 뭐라든가. 그것도 한 지게에 몇 천 원씩 줬지.” 소도 안 뜯어먹던 그 풀이 풍란 같은 난초였다니. “그뿐인 줄 아는가. 솔구지의 까만 돌들도 수석 한다는 사람들이 돈 몇 푼 주고 다 파갔다네.”

천지에 널려 있던 그 돌들이 그럼 오석이었다는 말인가. 왜 그 귀한 것들을 헐값에 팔았느냐고 물었더니, “돌덩이가 금덩이인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되묻는다.

그 말을 듣자 나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였다는 최영 장군이 떠올랐다. 달리 말해야 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돌을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고 말해야 진정한 교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무슨 큰 깨달음이나 얻은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런데 사실을 말한다면, 지금도 나는 그 생각을 깨달음으로 여긴다. 제값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나무와 풀과 돌을 그 자리에 놔두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제값을 한다. 그것들이 없으면 이 나라 땅이 없고, 이 나라 땅이 없으면 이 나라의 삶이 없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것들은 황금알을 낳는 닭과 같다. 황금은 한때의 황금이고 자연은 수수만년 세월의 황금이다.

그래서 나는 구럼비바위를 폭파하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 바위를 깨뜨리지 말라. 내 고향의 순박한 농부와 어부들이 내내 후회하고 있는 일을 지금 당신들은 어마어마한 명분을 내걸고 저지르려 하고 있다. 천년 세월을 팔아 한 시절을 살려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생각하라.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라. 나라를 사막으로 만들고 무엇을 지키려는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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