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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봄밤의 스크린 / 김별아

등록 2012-03-16 19:27

김별아 소설가
김별아 소설가
영화 내내 옆 두 여인이 울었다
그들의 가족이 저 속에 있었다
나는 입술을 세게 감쳐물었다
나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최신 개봉작을 모른다는 사실이 바로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그와 별개로 문자 언어에 길들여진 내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상상할 수 없는 것까지 노골적으로 펼쳐보여주는 영상은 지나치게 위압적이다. 게다가 영화관에 붙잡혀 ‘잠시 멈춤’을 누를 수도 ‘돌려보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빠지면 좌불안석 불안하고 괴롭다. 이런 지경에 예술영화는 가당찮다. 끊임없이 머리에 강펀치를 맞는 듯한 블록버스터도 버겁다. 그저 달콤한 맛에 취해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한 로맨틱 코미디 정도가 감당할 만한 전부다.

이러한 ‘저급 관객’에 불과한 내가 꽃샘잎샘이 한창인 봄밤에 홀로 영화관을 찾았다. 관람할 영화의 제목은 <두 개의 문>. 입구에서 받은 팸플릿에는 “당신이 배심원이라면?”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제작진은 법정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내게 <두 개의 문>은 공포영화였다. 그로부터 99분 동안 내 영혼은 전기의자에 앉은 듯한 쇼크와 작열통에 시달려야 했다. ‘두 개의 문’ 중 하나에서는 <13일의 금요일>의 살인마 제이슨이, 다른 하나에서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가 나온 것은… 물론 아니다. 공포영화의 단골 장치인 공동묘지와 비명 소리, 피칠갑한 얼굴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서울 용산구 대로변의 남일당 건물은 음산한 공동묘지보다 못할 게 없다.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 붉은 피보다 더 끔찍한 화마의 혓바닥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그렇다. <두 개의 문>은 2009년 1월20일 새벽에 벌어진 용산 참사와 그 후 3년간의 시간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옆에 앉은 두 여인이 울고 있었다. 그 숨죽인 울음소리가 너무 깊고 아파 나는 입술을 세게 감쳐물었다. 그들의 남편과 아들이 저 불타는 망루 속에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들은 지금도 감옥에 있다. 하지만 <두 개의 문>이 단순한 고발 영화나 이른바 ‘선동 영화’가 아닌 것은 냉정하고도 날카로운, 그래서 더욱 슬픈 카메라의 시선 때문이다. ‘공개재판’을 표방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불이 어떻게 붙었나, 경찰이 망루를 두들겼나, 화염병은 어디에 쌓여 있었나 같은 쟁점이 중요치 않다. 아무리 문외한일지라도 영화의 ‘스포일러’를 함부로 흘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겠다. 다만 영화가 끝날 무렵 내 마음에는 쓰라린 카타르시스가 자욱했고, 김민기의 노래 한 구절 “싸움터에 죄인이 한 사람도 없네…”가 귓가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어쩌면 영상 이미지보다 더 위압적이고 혹렬한 것은, 현실 그 자체이다.

<두 개의 문>은 용산 참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과 잘 아는 사람, 분노하거나 냉소했던 사람 모두가 봐야 할 영화다. 이건 꼭 내가 <두 개의 문>의 6월 극장 개봉을 위한 배급위원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제작단체 ‘연분홍치마’에 이메일(ypinks@gmail.com)을 보내 후원회비 3만원만 약정하면 나 같은 저급 관객을 포함해 용산의 진실을 알고파 하는 어느 누구나 배급위원이라는 영광된 이름을 얻을 수 있다.

비록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지언정 진실은 이미 밝혀져 있다. 봄밤에 홀로 나선 영화 구경은 그래서 참 즐겁고, 슬프고, 아찔하였다.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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