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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연주 칼럼] 동물농장

등록 2012-03-25 19:21수정 2018-05-11 15:44

정연주 언론인
정연주 언론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는 동물들이 그들만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만든 7계명이 나온다. 첫 계명이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이다. ‘두 발로 걷는 것’이 사람에게는 ‘기본’인데, 동물농장에서는 ‘적’이 되어버린다. 이런 일이 오웰의 소설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지난 4년의 세월 동안,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둘러보면 동물농장의 풍경들은 도처에 있다.

두달 가까이 파업중인 <문화방송>의 피디들이 만든 <‘피디수첩’ 잔혹사>에는, 정권에 불리한 주제들을 피하기 위해 간부가 제작피디의 서랍을 뒤지고, 제작과 무관한 곳으로 발령을 내는 등 온갖 해괴한 행태와 논리가 등장한다. 오죽했으면 ‘피디수첩’이 아니라 ‘피떡 수첩’이라고 불렀을까.

역시 파업중인 <한국방송> 새노조가 밝힌 그곳 모습도 비슷하다. “반달가슴곰의 둘째 출산과 장수풍뎅이가 애완곤충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뉴스가 주요 리포트로 방송되는 반면, 나경원의 기소청탁은 단신 몇 문장으로 처리하고, 내곡동 사저 파동 때는 취재기자 한명 보내지 않고 청와대 해명만 그대로 전달하는 뉴스가 바로 케이비에스 9시 뉴스”라고 새노조는 꼬집었다.

이 정권 인사들의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를 비롯하여 수구세력에 불리한 주요 뉴스들은 무시·왜곡·축소되는 반면, ‘반달가슴곰 둘째 출산’ 등 보들보들한 이야기가 주요 뉴스가 되는 게 방송 저녁뉴스의 일상적 풍경이다. 5개 언론사의 동시파업은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라는 기형적인 지금의 언론 상황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사실보도’와 ‘권력 감시·비판’이라는 언론의 ‘기본’을 하겠다는 일선 기자·피디·아나운서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해직 등의 징계와 재산가압류 조처까지 취하는 행태가 정녕 동물농장 풍경이 아니고 무엇인가.

언론계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뿌리인 수구세력이 집권해온 지난 4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뒤집히면서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미네르바, 피디수첩,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 쥐그림 등에서 보듯 망나니 같은 정치검찰의 칼날에 싹둑싹둑 잘리고, 경제정책은 부자감세와 재벌의 방목, 대형 토목공사 등에서 보듯 주로 ‘가진 자’ 중심이다. 남북관계도 냉전시대로 회귀하면서 미국산 무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부자감세로 정부 수입은 크게 줄어들고, 대형 토목공사에다 미국산 무기 대량구매 등으로 정부 지출은 크게 늘어나니,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복지와 미래를 위해 써야 할 재원이 그렇게 고갈되어 간다. 정말 나쁜 정권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불법·위법·탈법이 판을 치고 있다. 게이트로 번지고 있는 민간인 사찰과 은폐 공작, 내곡동 사저 문제, 비비케이(BBK)와 김경준씨 기획입국설을 둘러싼 새로운 의혹, 방송과 언론환경을 난장판으로 만든 미디어악법, 돌이킬 수 없는 자연파괴에다 대형 부정과 재앙의 소지를 안고 있는 4대강 사업….

이 정권 아래서 ‘두 발로 걷는’ 기본과 상식이 뒤집힌 동물농장 풍경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데도 숨이 찰 정도다. 그런 정권과 그 정권의 뿌리를 이루는 수구언론, 수구정당을 청산·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동물농장 같은 세상에서 그냥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름을 바꾸고 푸른 제복에서 빨간 제복으로 갈아본들 그 본색이 어디로 갈까. 그새 이름과 빨간 제복 너머로 유신의 유령도 어른거린다.

이런 조건이 지속된다면 이 동물농장 같은 조건 속에서, 특히 자신들의 꿈을 찾기도, 이루기도 쉽지 않을 젊은 세대에게 ‘4·11의 선택’은 절박하다. 2010년 지자체 선거 당시 통계를 보니 19살 이상 20대 유권자가 758만명, 10%만 더 투표하면 76만표가 더 나온다. 김대중 대통령이 39만표, 노무현 대통령이 57만표 차이로 당선되었으니, 20대의 10%인 ‘76만표의 힘’은 세상을 바꾸고도 남는다. 특히 작은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 힘은 절대적이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자기 삶의 주체로 적극 뛰어들면 세상은 뜻밖에 쉽게 바뀐다. 그게 희망이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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