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가난해서 살찌는 아이들
“그놈 장군감이네.”
못살던 시절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아이들은 부의 상징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세상이 바뀌어 비만이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비만이 초래하는 각종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자 비만은 현대인들의 ‘기피대상 1호’가 됐다.
비만은 단순히 개인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개인의 비만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건강까지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 발표를 보면, 1998년 저소득층(소득수준 하위 25%)의 소아청소년(만 7~18살) 비만율은 5.0%였으나, 2008년엔 9.7%로 10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소아청소년 비만의 경우 68% 정도가 그대로 성인비만으로 이어진다. 이는 사회 전체 구성원의 비만율이 늘어나고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선의 한 사회복지사는 “저소득층의 경우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이 많은데 아이들에게 적절한 보살핌을 해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비만인 아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지원을 받는 가정의 아이들을 보면 비만인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번 ‘낮은 목소리’는 가난해서 살이 찌는 역설적 상황에 처한 한 초등학생 아이와 그 어머니를 만났다. 아이의 독백과 어머니의 답장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이름은 가명이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열살 찬민이의 독백
안녕하세요. 저는 찬민이에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어요. 저는 뚱뚱해요. 키는 140㎝인데 몸무게는 56㎏이에요.(현재 한국의 만 9살 남자 아이의 평균 키와 몸무게는 137㎝와 34.9㎏이다. 찬민이의 신체질량지수는 28.57로 과체중을 넘어 병적 비만에 해당한다.) 원래는 뚱뚱하지 않았어요. 갑자기 뚱뚱해진 건 부모님이 이혼한 뒤부터예요.
아빠는 구두를 만드는 공장에 다녔어요. 엄마는 예전에 일을 했다는데 절 낳고는 관뒀대요. 아빠는 새벽에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어요. 엄마는 아빠를 출근시킨 뒤 절 깨워서 밥을 먹이고 학교를 보냈어요. 엄마는 된장찌개를 잘 끓였어요. 고기도 안 넣고 멸치를 넣어서 끓이는데 그거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을 다 먹었어요. 편식도 안 했어요. 두부나 콩자반 같은 것도 잘 먹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아빠가 다니던 구두 공장이 부도가 났어요. 그 뒤 아빠는 집에만 있었어요. 자주 술을 마셨어요. 저녁에 내가 잠들면 엄마·아빠는 방 밖에서 자주 싸웠어요. 어느 날, 아빠가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어요. 리어카에 각종 생필품을 실어다 팔았어요. 그런데 그것도 몇 달 하더니 관뒀어요. 엄마·아빠는 더 자주 싸웠어요.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아빠는 집에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어요. 엄마는 “이제 엄마랑만 사는 거야”라고 했어요.
엄마는 식당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오후에 나가서 밤 11시쯤 들어왔어요. 살이 찌기 시작한 건 엄마가 식당일을 하면서부터였어요.
아침 7시쯤 일어나면 엄마는 자고 있어요. 엄마는 피곤하다며 부엌에 빵이 있으니 알아서 먹고 가라고 했어요. 저는 주로 식빵에 잼을 발라 먹었어요.(식빵은 섭취 뒤 혈당의 상승도를 나타내는 ‘혈당지수’가 91로 도넛(86)이나 캐러멜(86)보다 높다. 고혈당지수의 음식을 장기간 섭취할 시 비만과 성인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점심시간쯤 되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어요.(고혈당지수의 식품들은 혈당을 급격히 높인 만큼 빨리 떨어지게 만든다.) 배가 고팠다 먹으니 먹는 양이 늘어났어요. 두번씩 타 먹는 건 기본이었어요.
학교는 오후 1시40분에서 2시30분 사이에 끝나요. 집에 오면 엄마는 출근할 준비를 하거나 이미 출근하고 없어요. 가끔 천 원짜리 한 장을 티브이 옆에 놓고 나가요. 전 그걸 가지고 떡볶이나 튀김을 주로 사먹고, 남는 돈으론 문방구 앞에서 오락을 해요. 그 뒤엔 지역아동센터에 가서 놀아요. 거기서 간식을 주는데 과일 같은 것들이 많아요. 별로 맛이 없어요. 아동센터에서 주는 저녁 급식까지 먹고 집에 오면 8시쯤 돼요.
부모님 이혼 뒤 찾아온 비만
아침 제대로 못먹자 점심 폭식
식당일 엄마 밤에 들어오면
식욕 못 참고 두번째 저녁식사 이제부터는 혼자 있는 시간이에요. 주로 누워서 티브이를 봐요. 티브이를 보면서 과자를 먹어요. 꿀꽈배기, 포카칩을 제일 좋아해요. 식탁 위에 엄마가 사다 놓은 군것질거리들이 항상 있어요. 아, 비닐을 벗겨 먹는 소시지도 제가 좋아하는 간식 가운데 하나예요. 엄마는 밤 11시에 들어오면 그때 저녁을 드세요. 나도 엄마가 차린 상에서 같이 밥을 먹어요. 저녁을 두 번 먹는 셈이에요. 안 먹으려고 해도 음식 냄새를 맡으면 배가 고파져요. 가끔 밥이 없으면 라면을 먹기도 하고,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먹을 때도 있어요. 저도 솔직히 그게 더 맛있어요. 엄마가 장을 봐올 땐 거의 소시지, 즉석요리, 즉석밥 같은 것들이에요. 집에서 채소 반찬을 못 먹은 지 한참 되는 거 같아요. 엄마가 일하느라 힘들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요리를 하지 않아요. 이런 생활을 1년 정도 하니 갑자기 몸무게가 늘기 시작했어요. 바지가 작아져 옛날 바지는 입을 수가 없었어요. 엄마가 “살 좀 빼라”며 나무라기도 했는데 저는 먹는 걸 줄일 수가 없었어요. 엄마도 계속 빵이나 과자 같은 것만 사다 놨어요. 제가 다른 음식은 잘 안 먹기 시작했거든요. 채소 반찬은 사라진 지 오래
피자·라면·치킨으로 때우기도
원래 식성 잃어버리고 편식
“돼지” 놀림에 대인 기피까지 학교에 가는 것도 그리 즐겁지 않아요. 처음엔 재밌었는데 살이 찌니깐 괜히 공부도 하기 싫어지고 친구들하고 놀기도 귀찮아요.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해도 거의 꼴찌예요.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체육시간에 쉰 적도 있어요. 급식시간이 유일한 낙이에요. 최근에 충격을 받은 사건이 하나 있어요. 우리 반 아이들 사진을 찍어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놨는데, 내 얼굴이 너무 돼지처럼 나온 거예요. 아이들이 사진을 보고 “돼지”라고 놀렸어요. 점심에 밥을 많이 먹으면 “돼지처럼 먹는다”고 또 놀렸어요. 저 스스로 위축이 됐어요. 실은 제가 짝사랑하는 같은 반 친구 민영이라고 있거든요. 요즘엔 걔 얼굴을 잘 못 쳐다봐요. 절 뚱뚱하다고 싫어할까봐요. 밤에 엄마한테 말했더니 “너가 왜 돼지야”라며 화를 내셨어요. 나도, 엄마도 울었어요. 반 친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태권도장이나 수영장에 다녀요. 저도 다니고 싶은데 우리 집 형편상 어려워요. 먹는 걸 줄여야 한다는데 계속 식욕은 당겨요. 몸 움직이는 건 싫고요. 그래도 저 돼지라고 놀리지 마세요. 저, 돼지 아니라고요! 저도 살찐 거 싫다고요! #엄마가 찬민이에게 찬민아, 엄마야. 우선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구나. 많이 신경을 못 써줘서 말이야. 찬민이도 아는 것처럼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고 나서 많이 힘들어졌어. 엄마가 식당일을 하면서 한달에 받는 돈은 100만원 정도야. 그 돈으로 찬민이 건강까지 신경쓰는 게 너무나 어렵구나. 엄마는 매일 찬민이를 보니깐 살찐지 몰랐었어. 그런데 어느 날 네가 울면서 학교 홈페이지 얘기를 했을 때 직접 보니 실감이 났어. ‘너무 무심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팠어. 엄마도 예전처럼 맛있는 나물 반찬이랑 된장찌개랑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잡곡밥을 해주고 싶어. 그런데 찬민이도 아는 것처럼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 밥을 정성껏 해주고 싶은데 엄마도 대충 먹고 자자는 생각이 앞서. 찬민이 건강이 걱정돼서 가끔 집에 오면서 슈퍼에 들어가도 채소나 과일 같은 건 팔지도 않아. 그러니깐 자연스럽게 네가 좋아하는 햄이나 소시지, 과자, 빵을 살 수밖에 없더구나. 너 혼자 있는데 가스불을 켜서 밥을 해먹기도 어려우니 자꾸만 간단한 음식들을 사게 되는 거 같아. 요즘 몸에 좋다는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과자나 빵도 있다고 하던데, 가격이 굉장히 비싸. 우리 집은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해서 나라에서 주는 지원이 없으면 살기 힘든 집이야. 찬민이도 이거 잘 알고 있지? 혼자 생계 꾸리느라 신경 못써
아이 비만도 뒤늦게 알게 돼
유기농 제품 비싸 엄두 안나고
운동시키고 싶어도 돈이 없어 엄마도 마음 같아선 수영이나 태권도 시켜주고 싶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직접 해주고 싶어. 그런데 사정이 어려우니 어쩔 수가 없구나. 다른 구에서는 ‘스포츠 바우처’라고 해서 저소득층 가구에 태권도나 수영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데 우리 구는 아직 그런 게 없어.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요즘 찬민이가 조금만 걸어도 씩씩거리면서 숨차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 엄마도 이제 반성하고 있어. 우선 약속을 하자. 저녁에 엄마가 오기 전까지 군것질 안 하기, 그리고 골목길에서 매일매일 줄넘기하기. 그리고 편식하지 않기. 지킬 수 있지? 엄마도 노력할게. 파이팅!
아침 제대로 못먹자 점심 폭식
식당일 엄마 밤에 들어오면
식욕 못 참고 두번째 저녁식사 이제부터는 혼자 있는 시간이에요. 주로 누워서 티브이를 봐요. 티브이를 보면서 과자를 먹어요. 꿀꽈배기, 포카칩을 제일 좋아해요. 식탁 위에 엄마가 사다 놓은 군것질거리들이 항상 있어요. 아, 비닐을 벗겨 먹는 소시지도 제가 좋아하는 간식 가운데 하나예요. 엄마는 밤 11시에 들어오면 그때 저녁을 드세요. 나도 엄마가 차린 상에서 같이 밥을 먹어요. 저녁을 두 번 먹는 셈이에요. 안 먹으려고 해도 음식 냄새를 맡으면 배가 고파져요. 가끔 밥이 없으면 라면을 먹기도 하고,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먹을 때도 있어요. 저도 솔직히 그게 더 맛있어요. 엄마가 장을 봐올 땐 거의 소시지, 즉석요리, 즉석밥 같은 것들이에요. 집에서 채소 반찬을 못 먹은 지 한참 되는 거 같아요. 엄마가 일하느라 힘들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요리를 하지 않아요. 이런 생활을 1년 정도 하니 갑자기 몸무게가 늘기 시작했어요. 바지가 작아져 옛날 바지는 입을 수가 없었어요. 엄마가 “살 좀 빼라”며 나무라기도 했는데 저는 먹는 걸 줄일 수가 없었어요. 엄마도 계속 빵이나 과자 같은 것만 사다 놨어요. 제가 다른 음식은 잘 안 먹기 시작했거든요. 채소 반찬은 사라진 지 오래
피자·라면·치킨으로 때우기도
원래 식성 잃어버리고 편식
“돼지” 놀림에 대인 기피까지 학교에 가는 것도 그리 즐겁지 않아요. 처음엔 재밌었는데 살이 찌니깐 괜히 공부도 하기 싫어지고 친구들하고 놀기도 귀찮아요.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해도 거의 꼴찌예요.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체육시간에 쉰 적도 있어요. 급식시간이 유일한 낙이에요. 최근에 충격을 받은 사건이 하나 있어요. 우리 반 아이들 사진을 찍어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놨는데, 내 얼굴이 너무 돼지처럼 나온 거예요. 아이들이 사진을 보고 “돼지”라고 놀렸어요. 점심에 밥을 많이 먹으면 “돼지처럼 먹는다”고 또 놀렸어요. 저 스스로 위축이 됐어요. 실은 제가 짝사랑하는 같은 반 친구 민영이라고 있거든요. 요즘엔 걔 얼굴을 잘 못 쳐다봐요. 절 뚱뚱하다고 싫어할까봐요. 밤에 엄마한테 말했더니 “너가 왜 돼지야”라며 화를 내셨어요. 나도, 엄마도 울었어요. 반 친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태권도장이나 수영장에 다녀요. 저도 다니고 싶은데 우리 집 형편상 어려워요. 먹는 걸 줄여야 한다는데 계속 식욕은 당겨요. 몸 움직이는 건 싫고요. 그래도 저 돼지라고 놀리지 마세요. 저, 돼지 아니라고요! 저도 살찐 거 싫다고요! #엄마가 찬민이에게 찬민아, 엄마야. 우선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구나. 많이 신경을 못 써줘서 말이야. 찬민이도 아는 것처럼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고 나서 많이 힘들어졌어. 엄마가 식당일을 하면서 한달에 받는 돈은 100만원 정도야. 그 돈으로 찬민이 건강까지 신경쓰는 게 너무나 어렵구나. 엄마는 매일 찬민이를 보니깐 살찐지 몰랐었어. 그런데 어느 날 네가 울면서 학교 홈페이지 얘기를 했을 때 직접 보니 실감이 났어. ‘너무 무심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팠어. 엄마도 예전처럼 맛있는 나물 반찬이랑 된장찌개랑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잡곡밥을 해주고 싶어. 그런데 찬민이도 아는 것처럼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 밥을 정성껏 해주고 싶은데 엄마도 대충 먹고 자자는 생각이 앞서. 찬민이 건강이 걱정돼서 가끔 집에 오면서 슈퍼에 들어가도 채소나 과일 같은 건 팔지도 않아. 그러니깐 자연스럽게 네가 좋아하는 햄이나 소시지, 과자, 빵을 살 수밖에 없더구나. 너 혼자 있는데 가스불을 켜서 밥을 해먹기도 어려우니 자꾸만 간단한 음식들을 사게 되는 거 같아. 요즘 몸에 좋다는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과자나 빵도 있다고 하던데, 가격이 굉장히 비싸. 우리 집은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해서 나라에서 주는 지원이 없으면 살기 힘든 집이야. 찬민이도 이거 잘 알고 있지? 혼자 생계 꾸리느라 신경 못써
아이 비만도 뒤늦게 알게 돼
유기농 제품 비싸 엄두 안나고
운동시키고 싶어도 돈이 없어 엄마도 마음 같아선 수영이나 태권도 시켜주고 싶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직접 해주고 싶어. 그런데 사정이 어려우니 어쩔 수가 없구나. 다른 구에서는 ‘스포츠 바우처’라고 해서 저소득층 가구에 태권도나 수영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데 우리 구는 아직 그런 게 없어.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요즘 찬민이가 조금만 걸어도 씩씩거리면서 숨차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 엄마도 이제 반성하고 있어. 우선 약속을 하자. 저녁에 엄마가 오기 전까지 군것질 안 하기, 그리고 골목길에서 매일매일 줄넘기하기. 그리고 편식하지 않기. 지킬 수 있지? 엄마도 노력할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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