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동화작가
차인표, 수용소, 꽃제비…
극적인 부자상봉 기대했건만
아프게 허물어지는 슬픔
극적인 부자상봉 기대했건만
아프게 허물어지는 슬픔
봄다운 날씨가 아닌 탓에 며칠이나 동동거리고 다녔다. 바람은 매섭고 공기는 탁하고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일에 매달려 무덤덤하니 살다가 언뜻 매화나무에 꽃망울이 부풀어 있는 걸 보았다. 아무리 추워도 3월은 영락없는 봄이다. 콩알보다 작은 그것으로 인해 가슴에 환한 불이 켜지는 듯했다. 봄만큼 신비로운 세계가 또 있을까. 물기 말라버린 바삭한 상태건만 불현듯 뭐든 새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그러다 아득히 절망스러운 심정이 되고 말았다. 무심코 채널 돌리던 내 시선을 붙잡아버린 것.
별. 짙푸른 하늘에 부딪치면 소리가 날 듯 빛나는 별들. 그리고 어린아이의 죽음. 사막의 별을 덮고 애벌레처럼 구부린 채 잠들며 죽어가는 아이를 본 것이다. 아이는 신발을 품에 안고 있었다. 더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처연하다. 이런 결말은 상상하지 못했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얄팍하나마 신발이 놓여 있건만 신발이나마 꼭 신고 잠들었다면 저 아이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남한이라는 나라의 문턱을 넘었을 테고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죽음 직전에라도, 목숨만 붙은 채라도 부자상봉의 엔딩이면 이토록 가슴 불편하고 먹먹하지 않을 텐데. 하필이면 인적 없는 막막한 몽골의 사막. 저렇게 어린 아이가 죽어가건만 사막의 별이 저토록 반짝여도 되는가.
먼지를 일으키며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돌멩이를 공 삼아 축구를 했다. 병든 아내를 어린 아들에게 부탁하고 두만강을 건너는 아버지. 도망자의 삶과 남겨진 가족의 암담한 현실. 갈라진 길처럼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크로싱>. 탈북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다. 그런 정보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눈에는 인물 훤한 차인표라는 배우가 보였다. 꽃제비 역할 아역배우들의 예쁜 뺨이 보이고, 조연들의 종아리 근육, 서툰 이북 말투가 들렸다. 수용소 장면에서조차 집요한 내 눈은 꽤 오래전에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요덕 이야기>의 참상을 확인하려 들었고, 아버지와 아들의 극적인 상봉을 단정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아프게 허물어지는 슬픔. 너무 어린 목숨이 사막에서 끝내 스러지는 걸 보고서야 움직이는 가슴이라니. 도대체 내 속에 뭐가 살고 있는가. 어쩌자고 이토록 냉정해졌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탈북자 북송 문제로 남북 대표자 간에 몸싸움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며 가슴이 조마조마했었다. 안 그래도 예민한 사안에 몸싸움이 엉뚱한 불똥이 되면 어쩌나 싶어서. 벌써 많은 탈북자가 북송되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념으로 갈라져 멀고도 먼 나라가 된 북녘은 때로 우리에겐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전쟁과 배고픔을 기억하는 세대가 세상을 떠날수록 더 심해질 것이나 우리가 시한폭탄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사람이 가질 최소한의 도리이다. 이 작은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낯선 민족까지도 알았으면. 그래야 따듯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냉담한 가슴에 환히 켜지던 매화처럼.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 문제는 정치적 접근이 아닌 인도주의적 해결이라야 또다른 폭력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겪는 참상이 바로 내 현실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또 속이 어지럽다.
황선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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