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언론인
친일 세력, 남북 대결을 선호하는 냉전세력, 박정희 등 군부정권 지지 세력, 30년 이상 지속된 영남 정권 아래 이득을 취해온 지역패권주의, 경제적 강자. 우리 사회 수구보수의 주요 구성인자다. 주로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대체로 조중동을 구독한다. 조중동 사설과 비슷한 세계관,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위기가 닥치면 순식간에 강력한 응집력을 보인다.
이 세력의 중심부가 시멘트보다 강고하게 우리 사회의 37% 언저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는 적지 않다. 6월항쟁 이후 치러진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36.6%를 얻었다. 오랜 군부독재 이후, 특히 6월항쟁 이후 민주화 열망이 가장 높았던 때 전두환의 후계자인 노태우 후보가 얻었던 36.6%는 박정희 세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일 뒤, 국민적 애도가 가득했을 때 <한겨레> 여론조사가 ‘서거와 관련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보는가’를 물었다. 37.5%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정치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여지없이 폭로된 한명숙 전 총리의 1차 사건(1, 2심에서 모두 무죄)에 대해 <경향신문>이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는지를 물었다. ‘문제없다’가 37.7%였다. 지난 3월 초, 야권연대가 합의된 뒤 <와이티엔>(YTN)이 야권연대에 대해 물어보았다. ‘잘못됐다’가 37%였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변함없이 수구보수적 가치를 강하게 보이는 37% 근방의 세력이 존재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세력의 투표 성향은 거의 ‘묻지마’ 수준이다. 이번 총선에서 논문 표절과 성폭행 미수사건 등의 후보가 당선된 것은 ‘묻지마’ 투표의 상징이다. 이처럼 강고한 세력에다 안정을 선호하는 보수적 중도층을 합치면 순식간에 50%에 육박한다. 오세훈 시장의 헛발질로 촉발된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온갖 악재의 덤터기 속에서도 나경원 후보가 46.2% 득표했다. 과거 선거를 보더라도 그렇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혼자 힘이 아닌, 디제이피 연합, 97년 외환위기, 정몽준과의 단일화 효과 등의 힘을 빌려 기적처럼 당선되었다. 그것도 간신히 39만표(김대중), 57만표(노무현) 차이로.
또 다른 하나의 강고한 조건은 언론환경이다. 조중동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정권친위대가 장악하고 있는 방송, 경제지, 그리고 대부분 신문이 강자와 자본의 논리를 펴고, 한나라당(새누리당) 정권과 재벌에 매우 친화적이다. 제도언론의 90%가 수구보수 편이다. 이런 언론조건은 마치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한 팀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경기를 하는 모양새와 똑같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 조건이고, 사회 구조다. 이런 조건이기에 야권이 정말 제대로 잘해서 국민에게 무한감동을 주지 못하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런 ‘강고한 구조’를 깨부수는 새로운 세력과 희망도 분명 자라고 있다. 수구보수와는 다른 가치관·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2030의 젊은 세대다. 언론 쪽에도 디지털 기술에 바탕을 둔 새 언론이 등장했다. 이번 총선에서 높은 20대 투표율(64.1%로 전국 평균보다 19.1%포인트 높았음)과, 팟캐스트와 에스엔에스(SNS) 영향력이 집중된 서울에서 야권이 대승을 거둔 것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총선이 끝난 뒤 이런저런 분석이 나온다. 야권이 반성할 것은 처절하게 반성하고, 희망의 씨앗은 키워가야 한다. 특정 계파와 지역주의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분열적 자해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국민에게 감동은커녕 외면과 냉소만 불러올 뿐이다. 희망의 씨앗인 젊은 세대의 적극 참여를 불러올 수 있는 구체적 비전과 전략을 보여주고, 수구언론을 청산·극복하는 언론개혁의 노력에 힘을 모아야 한다. 방송의 독립을 위한 연대와 싸움, 수구언론이 숙주인 종편채널에 대한 집중 타격, 새 언론의 확장은 시급한 과제다.
민주주의는 한판의 승부가 아니다. 그것은 탑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각고의 노력과 자기반성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혹독한 역사 과정이다. 젊은 세대의 적극 참여, 그리고 수구언론의 청산·극복과 방송 독립을 위한 싸움에 나서기 위해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야겠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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