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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독도에서 아침을 / 황선미

등록 2012-04-20 19:07

황선미 동화작가
황선미 동화작가
하늘을 메운 괭이갈매기들
벼랑 끝에서 펄럭이는 깃발
아, 여기였구나
독도에 발 디디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처음 일정이 개인 사정으로 변경되면서 꼬박 일년을 기다린 셈이다. 행정적인 절차보다 까다로운 게 접안 가능성이 일년에 고작해야 육십일도 안 되는 기상조건이었다. 사실은 하늘이 허락해야 독도에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도 뭐 그렇게까지 호들갑인가 싶었다. 가면 가는 거지, 배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남의 나라에 무단 침입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어쨌거나 어민숙소에 들기 위해 기다리는 일년은 독도가 흥얼흥얼 읊조리던 노랫말이나 뭔 때만 되면 등장하는 궐기대회 구호 이상의 어떤 의미가 되는 시간이기는 했다. 알면 알수록 내가 독도를 품어도 될 만한 사람인지 고민스럽고 보잘것없는 그릇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국토의 맨 가장자리에서 거센 바람에 맞서고 있는 고독한 섬. 그 작고 오래된 돌섬에 바쳐진 사람들의 역사는 약은 생각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새벽 세시부터 나선 길. 아이처럼 순수하게 그저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독도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에게 무엇인지. 울릉도까지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 어려움은 없었는데 독도행 배편이 취소되면서 막막해졌다. 너울이 높으면 아예 배가 못 뜨기도 하고 독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단다. 바다만 바라봐야 하는 멍한 심정. 하면 된다는 식의 오기를 별로 의심해본 적 없는데 의지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이렇게도 겪는구나. 일정 잡을 시점에는 날씨가 안중에도 없었는데. 이래서 하늘이 허락해야 들어간다고 하나. 관광 목적이 아니라서 울릉도에 발이 묶여 하루를 소비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밤을 보내고 맞은 쾌청한 날. 부정이라도 탈까 싶어서 말을 아끼며 독도로 갔다. 그러나 막상 독도 근처는 접안이 어려울 만큼 물너울이 심했다. 수심 깊은 바다와 깎아지른 듯한 돌섬의 지형 때문이었다.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마중 나온 경비대 젊은이들이 배에 줄을 걸어서 잡아당기고 다리를 붙들어 주어 간신히 독도에 발을 디뎠다.

앳된 경비대원들과 하늘을 가득 메운 괭이갈매기들. 그리고 벼랑 끝에서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 아, 여기였구나. 아찔하게 솟은 절벽 틈에서 대를 이어 살아가는 새들처럼 사람들도 가파른 절벽에 용케 거처를 두고 있었다. 독도에서의 삶은 사람보다 자연의 순리에 맞춰진 듯했고 그래서 더 숙연해졌다.

독도 거주민인 이장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며칠 전 일본의 외교청서 때문인지 궐기대회 참석차 울릉도로 나가시는 바람에 빈집을 지키게 되었다. 남의 주머니를 탐하는 일본의 지칠 줄 모르는 집착에 대한 항의. 이젠 뉴스의 한 줄 기사도 안 되는 집회. 일본의 대외적인 행동에 비해 어떤 영향력이 있을지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정세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독도 영유권을 문서로써 주장하고 그릇된 역사의식이 분명함에도 자손들의 교과서에까지 명시하는 일본의 처세는 교묘하고 집요하고 장기적이니 말이다.

침낭에서 애벌레처럼 깨어나 밖으로 나가니 하늘이 온통 괭이갈매기 떼다. 고양이처럼 울어대며 바람을 타고 먹이사냥에 나선 새들의 아침을 본다. 서도에서 바라보는 동도의 여명. 늙은 거인처럼 버티고 있는 저 속에 깃든 삶이 참으로 많다. 신라 이사부에서 지금 우리까지. 그리고 자손에게까지 이어져야 할 삶의 터전. 독도는 명백하게 대한민국의 역사이고 재산이다.

황선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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