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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연주 칼럼] 내가 만일 김재철·김인규였다면

등록 2012-05-27 19:20수정 2018-05-11 15:45

정연주 언론인
정연주 언론인
4년 전인 2008년 5월 중순, 내가 <한국방송>(KBS) 사장에서 강제해임되는 과정에 핵심 올가미로 작용한 검찰의 배임 혐의 수사와 감사원의 특별감사는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5월14일, 전 케이비에스 직원이 ‘업무상 배임’으로 나를 고발하자,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일방적인 수사내용은 조중동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나는 참으로 파렴치한 중죄인이 되어버렸다. 판결은커녕 기소도 되기 전의 일이다.

배임 혐의로 고발당한 바로 다음날인 5월15일,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3개 보수단체가 감사원에 케이비에스 특별감사를 청원했다. 감사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엿새 만에 특별감사 실시를 결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특별감사팀이 점령군처럼 들이닥쳐 나의 비리와 케이비에스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직전인 5월12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김금수 케이비에스 이사장을 만나 나의 퇴진을 다시 강력히 요구했다. 최 위원장은 “최근 미국산 쇠고기 파문 확산과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이 방송 때문이며, 그 원인 중 하나가 조기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케이비에스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시기는 수구성향의 케이비에스 노조가 ‘정연주 퇴진’ 서명운동을 한 시기와 겹친다. 그들은 4월22일부터 5월16일까지 25일간 서명운동을 벌였다.

검찰의 배임 혐의 수사와 감사원 특별감사가 시작된 비슷한 시기인 6월5일부터 국세청은 케이비에스에 교양·드라마 등의 프로그램을 공급하던 7개 외주 독립제작사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했다. “정연주 사장 비리 하나만 털어놓으면 세무조사는 없던 걸로 하겠다”며 겁박했다는 얘기를 당시 세무조사로 곤욕을 치렀던 분에게서 최근 들었다.

4년 전 일을 되돌아보면, 그때와 지금 문화방송(MBC)과 케이비에스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특히 김재철·김인규 사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만약 내가 지금 온갖 해괴한 의혹의 중심에 있는 김재철 사장이거나, 이명박 후보의 ‘특보 출신’으로 도청사건이 터진 케이비에스의 김인규 사장이 처한 자리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4년 전에는 그렇게 온 권력기관이 총출동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조중동, 케이비에스 노조가 강고한 강철대오를 형성하여 벌떼처럼 내게 덤벼들었는데, 지금 그때 그 세력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잠하다.

2년 동안 법인카드를 7억원이나 쓰고, 한 여성 무용가에게 특혜의혹 출연 27회 등에 20억원이 넘는 거액을 주고, 그 오빠에게 그럴듯한 자리도 만들어주고, 함께 투기지역에 아파트도 구매하고… 게다가 낮 시간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기자가 “혹시 김재철 사장님 되세요?”라고 묻자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시치미를 뚝 떼는 동영상에 이르면 이 점입가경의 해괴한 행태의 끝이 어디쯤인지 짐작이 안 된다.

그런데 수사기관의 대응은 불공정의 극치를 보여준다. 엠비시 노동조합 지도부에 대한 수사와 구속영장 신청은 전광석화처럼 하면서도, 정작 온갖 의혹이 쌓여만 가는 김재철 사장 건은 맹탕 수준이다. 게다가 케이비에스의 도청과 도청문건의 정치권 전달 사건을 맹물 수준에서 수사한 경찰을 보면 과연 이들이 ‘수사권 독립’을 외칠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니 에스엔에스(SNS)에는 “정연주 사장은 국세청까지 동원해 탈탈 털어 나오는 게 없어도 억지기소를 해가며 사장 자리에서 끌어내리더니, 김재철 사장은 온갖 비리 의혹이 쏟아져도 나 몰라라 하며 외면하는 후안무치의 이중성. 비리 옹호가 엠비(MB)정권과 새누리당의 실체인가”라는 글이 계속 나돈다.

이 시대 집권세력의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 얼굴이 적지 않다. 논문표절을 한 인물도, 제수 성추행 의혹을 받는 인물도 새누리당 간판으로 당선되었다. 그 추한 행렬에 이제 방송 쪽에서도 이름을 얹어놓고 있다. 그들이 오래 자리를 지키면 지킬수록 집권세력의 추한 모습은 국민들 가슴에 더 깊이 새겨질 뿐이다. 국민을 우습게 아는 이런 오만은 꼭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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