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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한국이 미국에 ‘밀리는’ 진짜 이유

등록 2012-06-04 19:14수정 2012-06-05 11:18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행복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학회 참석차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캠퍼스를 거닐다가 사이언스 갤러리에서 열린 ‘행복’이란 제목의 전시회장 벽에 쓰인 이 문구 앞에 멍하게 서 있었다.

어디 문제없는 삶이 가능하기나 한가! 불행은 문제가 발생한 순간이 아니라,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극대화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구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데?” 내가 생각한 대답은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항상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고민이라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받지 못하면 살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란 힘들다.

도움과 행복 사이에는 ‘과학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주택, 수입, 일자리 등과 함께 주요 지표로 등장한 것이 구성원들이 도움을 주고받는 정도를 나타내는 ‘커뮤니티 지수’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보다는 ‘상부상조’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가 도움에 더 적극적이지 않을까? 국가간 문화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호프슈테드(Hofstede)에 따르면 개인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18점인 반면, 미국은 무려 91점을 기록해 각기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를 대표하는 나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오이시디의 조사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이다. 힘든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 항목에서 한국은 81%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얼핏 보면 높은 듯하지만, 실은 오이시디 평균(91%)을 훨씬 밑돌 뿐 아니라 조사대상 36개 국가 중 35위로 최하위다. 반면 미국은 92%로 17위를 차지했다. 저녁이면 친구, 동료들과 어울려 술 마시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한국 남성은 77%만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고, 여성은 84%가 그렇다고 답했다.

왜 한국인은 도움을 받기가 어려울까? 뒤집어 보면 그만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이시디 국가 시민들은 하루 평균 4분을 자발적 봉사에 쏟는다. 한국은 겨우 1분이다. 미국은 세계 평균의 2배인 8분을 봉사활동에 썼다. 지난달 모르는 사람을 도와준 경험이 있는 한국인은 42%인데, 오이시디 평균은 47%이고 미국인은 65%다.

그렇다면 행복지수는 어떨까? 한국인은 36%만이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오이시디 평균은 59%이며, 미국은 70%에 달했다. 한국인은 퇴근 뒤에 ‘일로’ 술을 함께 마시고, 주말이면 ‘일 때문에’ 골프를 치고 오이시디 연평균(1749시간)을 444시간 초과한 2193시간을 ‘일한다’. 성인뿐이랴? 아이들은 엄청나게 공부를 해대고, ‘잘’하지만, 어린이 행복지수 역시 오이시디 국가 중 4년 연속 꼴찌(한국방정환재단,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자료)다. 오이시디 국가 중 청소년과 노인 자살률이 각각 1위인 나라 대한민국.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오이시디는 2011년 국민총생산(GDP)을 대체하는 지표로서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세상의 흐름이 돈이 아닌 행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이들에게 행복은 ‘성적순’이며 어른들에게는 ‘직위순’이라고 서로에게 ‘압력’을 가하고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 서로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그토록 선진국이 되고자 했던 우리는 이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진짜 ‘밀리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이다. 정부도 회사도 개인도 모두 말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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