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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새로운 미래를 상상에서 현실로 / 박혜령

등록 2012-06-08 19:13

박혜령  농민
박혜령 농민
핵발전 없이 전기는 어떻게?
에너지는 우리 삶을 통째로
새롭게 사유하는 문제입니다
17년 동안 땅을 황폐화시키지 않고 노동에 예속되지 않는 농업에 대한 도전으로 앞뒤 돌아볼 틈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2011년 3월11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더 이상 나를 개인의 삶에 가둘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시급한 반대운동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작 현지의 주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생각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관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환경을 규정지음에 정작 스스로 주체적이지 않고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끝없이 공부하는 것만이 최선이며, 농민은 더 많은 토지에 더 많은 단위 수확량을 목표로, 노동자들은 잘리지 않고 더 오래 더 많은 임금을 향유하며 살기 위해 매진합니다. 어부들에게는 그날의 어획량이 중요하고 그것이 곧 생존의 질을 결정하는 유일한 지표입니다.

무엇이든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소유하는 삶이 행복인 시대, 풍요의 가치로 획일화된 시대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생활을 하고 있고 이젠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석유에너지 없이는 바다에서 하루 물질도 농사도 불가능하며, 산골에서도 한여름엔 에어컨을 켜는 것이 생활이 되었습니다. 농업의 규모화를 위해 농가당 농업규모는 확대되고 에너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농업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근저에는 무한정 공급 가능한 에너지의 확대 생산이라는 전제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나의 현재를 가능하게 하는 핵발전소를 차마 내 지역이라는 이유로 건설을 반대할 만큼 우리가 뻔뻔하지 못한 것입니다. 핵발전 없이 전기는 어떻게 쓸 건가라는 말이 모두의 공감을 얻으며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것은 스스로 이 구조 속에 깊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핵발전을 당장 멈추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 또한 지금의 생활을 더이상 향유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생각의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문제는 이제 우리 삶을 통째로 새롭게 사유하는 문제입니다. 지금의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 통찰과 변화의 요구가 사회적 공감으로 형성되어야 정책이 바뀌고 사회구조가 바뀌고 우리의 삶이 변하게 됩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관심해지고 냉소하게 되고 무기력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에서 자신을 도려내 버렸습니다. 누군가 이 문제를 대신해서 판단하고 결정해줄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의 시기에는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세워 왔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더이상 유의미하지 않으며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변화의 필요와 가치가 생기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서도 그다음을 생각하고 희망과 미래를 만드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가 존재의 가치로 빛을 발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원치 않는 변화의 바람 안에 휩싸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늘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우리 스스로가 곧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박혜령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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