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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범죄의 대통령, 대통령의 범죄

등록 2012-06-13 19:25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검찰이 면죄부 논리로 제시한
‘성공한 쿠데타’와 ‘미래 이익의 분배’는
가히 궤변의 용호상박을 이룬다
참으로 공교롭다. 25년 전 6월 이맘때 온 나라를 뒤흔든 함성은 바로 ‘그 사람’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계절, 그는 다시 화려하게 우리 앞에 섰다. 화랑대 높은 단상에서 거수경례로 육사 생도들을 사열하는 그의 모습은 위풍당당하다. 눈을 비비고 시계를 다시 들여다본다. 귓가에는 그를 규탄하는 함성도 들려온다. 결코 환청이 아니다. 역시 역사는 바로 세워지지 않았다. 아니, 자꾸 거꾸로만 흘러간다.

‘범죄의 대통령’이 다시 활개를 치는 것에 때맞춰 우리는 ‘대통령의 범죄’라는 참담한 상황과도 맞닥뜨렸다. 겉으로 드러난 사안의 경중은 다르다. 내곡동 사저 땅 헐값 매입 의혹이나 불법 민간인 사찰 사건의 청와대 연루 의혹 등은 과거 전두환씨가 저지른 패악과 부패에 미칠 바는 못 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의 진전과 확고해진 도덕률 등을 고려한 ‘가중치 무게’로 따지면 계산 결과는 달라진다. 국고 횡령 의혹,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로 국민의 삶에 끼친 폭력과 모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궤도를 벗어난 권력’이라는 본질 역시 같다.

사건의 중심에는 예나 지금이나 검찰이 있다. 지난 1995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전임 대통령들에게 면죄부를 안겼다. 그리고 엊그제 검찰은 “내곡동 사저 건립으로 국가가 누리게 될 땅값 상승 이익을 이명박 대통령 쪽과 나누려 했다”는 청와대 쪽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공한 쿠데타’와 ‘미래 이익의 분배’는 가히 궤변의 우열을 구분하기 어려운 용호상박의 진수를 보여준다.

불법 민간인 사찰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 역시 허무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관봉 5천만원의 출처마저도 확인하지 못했으니 초라하다 못해 참담한 성적표다. 그러나 ‘패장’인 검찰의 모습은 너무나 당당하다. 아니,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이다.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나 면구스러움은커녕 보스를 무사히 보호했다는 안도감, 의리를 지켰다는 으쓱거림만 물씬 전해온다.

검찰이 최소한의 체면과 자존심까지 벗어던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 국민이 아무리 손가락질을 해도 결코 개의치 않겠다는 오기로 무장한 채 권력의 충견 노릇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 성공한 쿠데타를 들먹이면서까지 당시 최고권력의 뜻을 받들어 모신 찬란한 전통은 면연히 이어지고 있다.

검찰이 지금 시점에서 고민하는 문제는 어떤 권력한테 꼬리를 흔들 것이냐다. 현재는 당대 권력과 미래 권력 간의 힘의 균형이 전이되는 미묘한 시기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양쪽의 이해관계는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현 정권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지 않는 것이 미래 권력한테도 유리하다는 데 양쪽은 의견을 함께한다. 초록은 동색이며,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고,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는 서로 의지하는 법이다. 그러니 해묵은 현안들을 몽땅 창고떨이로 정리해주는 일쯤이야 검찰로서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새누리당이 마음만 먹었으면 권재진 법무부 장관을 경질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말만 꺼내는 척하다가 슬그머니 접었다. 총선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들이 권 장관의 해임을 촉구하고 나선 적도 있었으나 총선 후 이런 기류는 햇빛에 안개처럼 사라졌다. 권 장관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수사 결과로 이어질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은 먼 산만 바라보았다. 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 결과는 결국 현재-미래 권력의 합작품인 셈이다. 그러니 개를 나무라 봤자 헛일이다. 개는 그냥 개일 뿐이다.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라는 궤변까지 동원하며 보호하려 했던 ‘범죄 대통령’의 결말은 어떠했는가. 아무리 기를 써서 막으려 해도 막지 못하는 것이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다. 거기에 역사를 지켜보는 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대통령의 범죄’도 끝까지 지하에 묻히고 말 것인가.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릴 뿐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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