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그렇게 형님, 형님 해대면
듣는 형님도 부담 될텐데
혹시 그는 조폭 조직원?
듣는 형님도 부담 될텐데
혹시 그는 조폭 조직원?
남편이 입원하면서 보름 넘게 병원과 집을 왕래했다.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평상, 작은 사물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려주는 커튼까지 병실 풍경은 대량생산한 기성품처럼 너무도 똑같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자마자 남편에게서 대번 환자티가 났다. 누가 입든 당장 안색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을 만한 색인데 잦은 세탁으로 무늬도 지워져 흐릿했다.
첫 입원 기념을 핑계로 비교적 환자 수가 적은 입원실을 선택했지만 문가 쪽 환자들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기대만큼 조용하지는 않았다. 주로 그 자리는 비용이 가장 저렴한 입원실의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대기자나 하루이틀 머무는 단기 입원자들이 찾았다. 자전거를 타다 다친 소년부터 암 수술을 앞둔 도서실 사장님과 목사님까지 다양한 이들이 그곳을 거쳐 갔다.
그 환자는 잠깐 볼일을 보러 다녀온 사이에 입원해 있었다. 커튼이 쳐져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커튼 아래로 드러난 검은 구두가 반질반질했다. 대부분의 입원 환자들이 그렇듯 그는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입원 사실을 알렸다. “접니다, 형님!” 형님? 그 말 한마디로 그의 고향이 짐작되었다. 큰 수술이나 검사 때문에 서울의 종합병원을 찾아온 듯했다. 형님이라면 나이 차가 좀 나는 큰형에게라도 전화를 하는 걸까? “예, 머리를 찍어봐야 안답니다, 형님.” “찍는다고 당장 나오는 게 아니구요, 형님. 좀 지켜봐야 한다는데요, 형님.” 그에게 수없이 형님이라고 다짐받고 있을 전화 속 인물이 궁금했다. 그렇게 형님, 형님 해대면 듣는 형님도 적잖이 부담을 느낄 듯했다. 친형은 아닌 듯하고 가까운 고향 선배일까? 이번엔 전화가 왔다. “예, 형님!” 이번에도 형님이었다. 그는 동년배보다 주로 형님들과 교제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혹시 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있지 않은가, 그곳 사투리를 쓰고 자신보다 서열이 위인 이들을 형님이라 부르는 검은 양복의 그들. 조폭영화의 한 장면. 움찔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게 사실이다. 혹시나 까칠한 남편이 그의 비위라도 건드린다면.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다. “자기만 생각하고 에어컨 너무 춥게 틀지 마. 잠 안 온다고 텔레비전 늦게까지 켜두지 말고. 괜히 형님 심기 건드리지 마. 아참, 행여 고향 이야길랑 꺼낼 생각도 말고.” 어느샌가 우리는 그 환자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니 남편 식판이 치워져 있었다. 손이 자유로운 ‘형님’이 치워주었다고 했다. 유산균 음료도 두개 사서 하나 나눠주더라고 했다. 커튼 밖으로 드러난 그는 일찍 금연에 성공했고 식사 후 3분 이내에 양치질을 하는 흔히 보는 내 또래의 깔끔한 중년 남성이었다. “그래도 형님 소리를 좀 하긴 하지?” 남편이 웃었다. 언제부터 그곳 사투리가 희화화되기 시작한 건지 모른다. 그가 한 형님이라는 말 한마디에서 왜 조폭이 연상된 건지, 아무래도 이십여년 전부터 쏟아져나온, 지금은 아예 하나의 장르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은 수많은 조폭영화의 제작자들에게 따져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락은 받으신 건가요?”
그날 오후 시숙이 올라오면서 병실 안은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뒤섞여 소란스러워졌다. 시숙은 오랜 서울 생활과 짧지 않은 미국 생활에도 결코 자신의 고향 사투리를 버리지 않았다. 병실 입구에서 떠들썩한 두 ‘형님’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이거 완전 영화 황산벌이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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