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언론인
런던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화려한 개막식과 한국 선수들의 메달 소식, 각종 경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로 올림픽 열기가 요즘 불볕더위만큼 뜨겁다.
그런데 이런 올림픽 열기를 보는 내 마음은 아프다. 4년 전 기억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개막 열기로 들떠 있던 그날 ‘거대한 작전’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날 아침 <한국방송>은 수천명의 경찰과 100여대에 이르는 경찰버스에 완전 포위됐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 본관 건물로 난입한 무술경찰 300여명의 폭력적 비호 아래 열린 한국방송 이사회에서 한나라당 추천 이사 6명(유재천·권혁부·박만·방석호·이춘호·강성철)은 나의 해임 제청을 결의했다.
전날 저녁 호텔에 투숙한 뒤 다음날 함께 회의장으로 이동하면서 ‘1박2일 해임작전’을 폈던 한나라당 추천 이사들의 해임 제청 결의는 이명박 정권 출범 뒤 청와대, 검찰, 감사원,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권력기관이 총동원되어 펼쳤던 ‘정연주 제거 작전’을 실질적으로 종결시키는 것이었다.
사흘 뒤인 8월11일,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해임 제청’에 서명함으로써 나는 한국방송에서 축출되었다. 이 대통령은 나를 해임하면서 “이제 케이비에스가 거듭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뒤 한국방송을 포함하여 이 땅의 방송이 어떻게 ‘거듭 태어났는지’, 어떻게 정권 친위대에 의해 장악되고 망가져 버렸는지는 올해 들어 <문화방송> <한국방송> <와이티엔>(YTN) <연합뉴스> 등에서 벌어진 장기 동시파업 사태가 잘 설명해준다.
한국방송 사장직에서 해임된 뒤 집으로 돌아가자, 검찰은 바로 나를 체포하러 왔다. 나의 해임에 핵심 요인이 된 ‘배임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였다. 2박3일 동안 검찰청에 갇혀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기소되어 3년 반 동안 재판을 받았으며,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최종으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3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났으니 이 사건이 얼마나 황당한 정치적 기소였는지 확인된 셈이다. 그런데 나를 기소한 정치검찰들은 지금도 핵심 요직에 있다. 내 사건 수사 라인의 실무 총책임자였던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이명박 정권 아래 승승장구하여 지금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다.
방송장악을 위해 치밀하게 진행된 ‘정연주 제거 작전’은 이처럼 올림픽 개막에 맞춰 착착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의 강제해임과 검찰 체포, 그 뒤의 방송장악 과정은 올림픽 열기에 묻혀 국민들 시선에서 사라졌다.
4년이 지났다. 이번에도 런던올림픽 열기가 달아오르는 시점에 방송장악과 관련된 사건들이 줄지어 터져 나온다. 한국방송에서는 김현석 새노조 위원장 해임을 비롯하여 18명의 새노조와 기자협회 간부들에게 정직·감봉의 중징계 폭탄이 떨어졌다. 문화방송에서는 김재철 사장에 대해 온갖 해괴한 폭로가 잇따라 터져나오는데도 그를 신임해온 방문진 이사진 일부가 다시 선임되었다. 사내에서는 파업을 끝내고 돌아온 사원들에 대한 대량 징계와 좌천이 꼬리를 물고 있고, 피디수첩 작가들을 한꺼번에 해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올림픽 열기에 죄다 묻힐 테니, 그냥 거리낌없이 해치워버리자는 속셈인 것 같다.
국민과 시청자들을 우습게 아는 오만이 아니고서야 이런 야만의 행태를 함부로 저지를 수는 없다. 이 오만의 무리들은 ‘5·16 쿠데타’를 두고 “구국의 결단”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외쳐대는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과, 그의 말 한마디에 모든 사안들이 군소리 없이 ‘종결’되어야 하고, 실제 ‘복도 지침’처럼 일사천리로 정리되는 ‘종박 체제’에서 더 힘을 얻는 듯하다. 자기들 세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을 터이니.
21세기 대명천지에 벌어지는 이런 야만의 행태를 멎게 하는 것은 오로지 깨어 있는 국민의 몫이다. 함께 아파하며 답을 찾아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절망과 아픔들이 어떻게 올림픽 열기 속에 묻혀버리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온갖 부패와 비리, 의혹들이 올림픽 열기에 함께 묻히기를 바라는 정치적 꼼수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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