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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사바나를 횡단하는 힘센 코끼리 / 박혜령

등록 2012-08-03 19:24

박혜령 농민
박혜령 농민
1톤의 무게도 거뜬히 들던
과거를 잃어버린 코끼리
우리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며칠 전 딸아이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심각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평소에 수다라곤 없는 아이라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학교에서 토론시간에 핵발전소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의 학교는 전교생이 35명 남짓한 작은 학교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모임을 만들며 그들의 방식으로 다른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그런데 평소에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던 딸아이 친구가 핵발전소를 찬성하게 되면서 친구들과 갈등을 겪게 되었다는 얘기다.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확연히 나뉘며 얘기를 이어가던 중 반대쪽이 그 근거를 얘기하자 ‘그럼 정부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냐’며 버럭 화를 냈다는 것이다.

논쟁의 쟁점은 다음과 같다. 찬성쪽의 의견은 핵발전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라는 주장이었다. 반대쪽의 반박은 원료인 우라늄 채굴 과정부터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이산화탄소보다 더 나쁜 방사능물질에 오염되기 때문에 청정에너지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아이들의 토론을 들으며 한편으론 근거의 얘기 수준에 놀랐고, 한편으론 어른들의 세상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에 놀랐다. 사실 논쟁의 진짜 쟁점은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분석하고 회의해 보느냐의 차이란 생각이 든다. 정책이나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의 말을 회의하는 것을 꺼리는 사회에서 소위 주류의 주장에 다른 의견을 내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미 결론을 내놓고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 의견을 조율해 가는 민주적 절차란 공염불에 불과하다. 더 나은 현실로 바꾸는 힘은 있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회의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생생한 체험을 통해 교육된 사회적 경험은 개인의 버릇이나 습관처럼 쉽사리 바뀌지 않고 굳어진다. 민주적인 논의와 여론수렴도 없고 반대하는 주민들은 밥줄이 끊길 것이 두려워 반대의사를 표출하지도 못하는 현실은 사회의 폭력이고 억압이다. 이웃나라에서 전 지구에 영향이 미칠 만큼 대규모의 핵사고가 일어났다. 그런데 우리의 선택에 대해 한 번도 회의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을 통해 그대로 학습되는 사회적 경험은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 전반을 통해 또다른 사회적 억압과 폭력을 양산하고 방치하게 될 것이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말뚝에 매어놓은 가는 줄에 묶인 채 얌전하게 서 있다. 서커스단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튼튼한 말뚝을 박아 놓고 질긴 줄을 묶은 다음 어린 코끼리를 목사리 해서 키운다. 코끼리는 목사리 해 있는 것이 괴로워서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치다가 곧 포기하게 되고, 몇년간 이렇게 자란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말뚝을 뽑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불가능했던 기억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1톤 정도의 무게는 거뜬히 들어올리는 자신을 잊고, 불가능했던 과거의 기억이 그의 의식·무의식을 지배하여 처음부터 힘을 쓰지 않고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벗어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아이들이 환경이나 조건, 습관이나 타성에 젖어 현실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행위가 아이들에게 굴욕적인 목사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자신을 한정짓지 않고 스스로 말뚝을 뽑는 코끼리가 되어보면 어떨까?

박혜령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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