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월요일 오전까지 소설가 ㅂ씨는 우리집 맞은편 아파트에 살았다. 물고기 비늘처럼 빽빽한 창들 중에서 대번 그의 집을 찾을 수 있었던 건 기역자 모양을 뒤집어놓은 듯한 창가의 불빛 때문이었다. 그 창엔 창 반쪽을 막다시피 한 커다란 책장이 놓여 있었다.
개츠비처럼 담배를 물고서는 아니지만 종종 그의 집 창을 올려다보곤 했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 불빛을 보면서 이 밤에 깨어 있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감과 동시에 힘을 얻곤 했다. 나중엔 창의 불빛만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실내등 하나 없이 불이 다 꺼져 있으면 장기간 외출이고 거실은 물론 큰아이 방까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손님이 있다는 뜻이었다.
월요일 오전까지 소설가 ㅂ씨는 우리집 맞은편 아파트에 살았다. 물고기 비늘처럼 빽빽한 창들 중에서 대번 그의 집을 찾을 수 있었던 건 기역자 모양을 뒤집어놓은 듯한 창가의 불빛 때문이었다. 그 창엔 창 반쪽을 막다시피 한 커다란 책장이 놓여 있었다.
개츠비처럼 담배를 물고서는 아니지만 종종 그의 집 창을 올려다보곤 했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 불빛을 보면서 이 밤에 깨어 있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감과 동시에 힘을 얻곤 했다. 나중엔 창의 불빛만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실내등 하나 없이 불이 다 꺼져 있으면 장기간 외출이고 거실은 물론 큰아이 방까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손님이 있다는 뜻이었다.
순식간에 결정된 이사 소식에 서운함이 앞섰다. 둘째의 유모차를 밀고 있는 그의 아내와 처음으로 인사한 날이 떠올랐다. 둘째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우리는 자주 어울렸다. 그는 오랫동안 지방과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호두과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자신이 강의하는 학교 근처를 뒤져 원조 호두과자를 사다주기도 했다. 학생들에 대한 열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시간강사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짬짬이 소설도 써야 했다. 게다가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의 아내나 가족만큼은 아닐 테지만 그를 좋아했던 몇몇 친구들은 그의 이번 임용 결과에 마음을 졸였다. 지금처럼 건강하다면 그는 정년 때까지 대학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정년이 보장된 삶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사십년 전 집장사가 똑같이 지어올린 날림 양옥들이 있던 골목에도 집 수만큼의 아버지들이 있었다. 여러 사업을 모색했던 우리 아버지와는 달리 많은 아버지들이 아이들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사범학교를 나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근 제분과 야금 회사의 근로자들이었다. 도시락을 옆구리에 끼고 출근해 저녁이면 숟가락 소리가 울리는 빈 도시락을 옆구리에 끼고 퇴근하는 아버지들을 보았다. 지금처럼 정년에 대한 위험은 없었다. 그런 아버지들을 보면서 성실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ㅂ씨와 또래인 남편이 작은 사무실을 꾸린 지 이제 5년이 넘었다. 현상 유지도 지금으로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가끔 우리의 5년 뒤를 생각한다. 점심을 먹고 괜히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린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커피집이다. 사이사이 빵집도 늘고 규모가 작은 술집도 생겼다. 지금도 포화상태인데 5년 뒤 혹은 10년 뒤에 우리가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사무실 1층 편의점은 일년 전쯤 주인이 바뀌었다. 얼마 전부터 주인 내외가 차례로 가게를 지킨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그의 나이는 기껏해야 나보다 예닐곱살 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라고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명퇴를 한 대기업 직원이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가끔 마주치는 그는 예전과 다르게 풀이 죽었다. 얼마 전 길 건너편에 생긴 편의점 때문에 매상이 줄어서일까. 알바 비용까지 줄이느라 내외가 뛰는데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 수익 때문일까. 좀더 따져보지 않고 덜렁 편의점을 인수한 것에 자책이라도 하는 듯하다. 우리의 5년 뒤, 10년 뒤 모습은 어떨까.
ㅂ씨 가족이 떠난 그날 밤, 우리는 습관처럼 앞 동 창들을 올려다보았다. 전날과는 달리 어디가 그의 집이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집 표지이던 책장 그림자가 사라지자 그의 집은 수많은 익명의 창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가 살던 12층을 찾느라 희번득하게 빛나는 창을 일층에서부터 헤아리며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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