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논설위원
이번 대선은 참 묘하다. 출마선언도 안 했는데 지지율 수위를 달리는 ‘안철수 현상’만이 아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꼽아도 네 가지는 된다.
우선 ‘묻지마 선거’다. 선거가 3개월 남짓 남았는데 대부분 유권자들이 안철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책 몇 권과 ‘무릎팍도사’ ‘힐링캠프’에서 본 모습이 전부다. 그의 ‘생각’은 어렴풋이 알겠는데, 정작 어떤 사람들이랑 어떤 방식으로 그 일을 하게 될지 여전히 안갯속이다. 문재인 역시 대중들에겐 아직 낯선 정치신인이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운명’적으로 대선에 나섰다지만 일반인들이 아는 그의 모습이래야 특전사 시절 사진이나 예능프로에서의 격파시범, 장례위원장 시절의 입을 앙다문 표정 정도의 이미지 아닐까.
청와대 시절 이래 정치를 20년 넘게 해온 셈인 박근혜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퍼스트레이디나 당 대표로서 카메라 앞에 공식 노출된 것 외에 그의 본모습은 사실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다. 담당기자조차 집에 가본 사람이 드물고, 요가 장면 등 공개된 사진 몇 장 외엔 사생활을 아는 이도 거의 없다.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면서 최저임금이 얼마인지도 몰랐느냐고 하지만, 그가 살아온 삶에 비춰보면 그게 정상이다.
이렇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도 있다. 예능프로의 ‘홍보’에 가려진 민낯을 들춰내는 데 너무 무기력하다. 오죽하면 ‘찌질이 검증’이란 비아냥까지 나오겠는가. 인터넷에 떠도는 ‘예상되는 조중동의 안철수 후속 보도’는 정곡을 찌른다. “안철수 백화점에서 정장 구매. 서민경제 배려 안 해” “안철수 백신, 감기에 소용없어” 등등. 안철수 검증은 룸살롱 주변을 맴돌고, 박근혜에 대해서도 5년 전 얘기 재탕이거나 아버지 과거 캐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후보 말이나 옮기는 ‘받아쓰기 선거’가 될 지경이다.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이렇게 설치는 것도 처음이다. 하던 수사도 자제하던 관행을 차버리고, 야당을 겨냥한 표적수사가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니 ‘망나니 선거’나 다름없다. 검찰 수사는 배당이 수사 범위·강도를 좌우한다. 선관위가 기초조사 해서 고발까지 한 여당 의원 사건은 부산으로 보내버리더니, 야당 사건은 공안부까지 제치고 총장 직할부대를 투입했다. 야당 원내대표 잡겠다고 대놓고 표적수사를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다. 여당 수사가 꼬리자르기로 끝날 것은 불문가지. 반면 야당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를 연상시키는 언론플레이까지 다시 도진 듯하다. 수개월 전부터 특정 야당인사를 표적으로 저인망식으로 훑어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검찰개혁 저지용인지 미래권력 줄서기인지 모르겠으나 선을 넘은 건 분명하다.
‘유야무야 선거’ 양상도 보인다. 야당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안철수 현상에 짓눌려 제1야당이 심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의 한귀영에 따르면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 “차라리 5년 뒤를 내다보고 장렬히 패배할 준비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은 고개만 약간 숙이면 5년 버티는 데 문제없을지 몰라도 민초들은 그렇지 않다. 쌍용차 노동자, 용산 철거민 같은 죽음이 또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경쟁에서 탈락한 벼랑끝 인생들에겐 지옥 같은 시간이 다시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수년째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해직언론인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일본보다 더한 보수일변도의 언론지형이 굳어질 수도 있다. 문화방송 사태가 이미 그런 조짐을 보여준다. 검찰개혁이 물건너가는 것은 물론이다. 함부로 ‘5년 뒤’를 입에 올릴 일이 아니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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