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뉴스를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저이가 다시 한번 삶의 길을 바꾸는구나, 저 결정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저이가 의사의 길을 버리고 컴퓨터백신 전문가가 되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게 얼마인가. 저이는 등장만으로도 우리를 즐겁게 하는데 과연 우리는 저이를 얼마나 도울 수 있을까.
문재인씨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는 걸 보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도 일어납니다. 고마움과 안타까움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정치인들의 얼굴과 판이한 맑은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움, 정치 아닌 길을 가려 했던 사람들을 정치판에 나서게 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작년 가을 박원순씨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지요.
그러나 저는 역시 제 즐거움을 큰 안타까움에 우선시키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탁한 정치판에 등장한 맑은 얼굴들이 참 반갑습니다. 그들의 등장이 반가운 만큼 그들을 등장하게 한 현실을 초래한 정치인들,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감사합니다.
정치는 친구와 같습니다. 좋은 정치는 우리 안에 내재하는 선하고 고상한 점을 끌어내고, 나쁜 정치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악하고 천박한 점을 드러냅니다. 요즘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성폭행 사건들과 ‘묻지마 살인’은 우리가 나쁜 친구들 속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안철수 후보는 ‘국민이 스승’이라고, 자신이 해내야 할 ‘시대의 숙제’를 가르쳐주었다고 말합니다. 한용운 시인을 흉내 내자면 ‘스승은 스승만이 스승이 아니고 가르치는 이는 다 스승’입니다. 스승은 크게 ‘교사’와 ‘반면교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참 반면교사들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반면교사는 알아보는 사람에겐 ‘교사’이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겐 ‘미워하며 닮게 되는 나쁜 본보기’입니다.
현실의 무게에 눌린 사람들이 반면교사를 알아보기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 저 사람처럼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식의 우회적 깨달음을 주는 반면교사보다, ‘맞아, 저이처럼 사는 게 옳아!’ 하는 직접적 가르침을 주는 ‘교사’가 필요합니다. 정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잘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치를 해본 사람들과 평생 정치만 해온 사람들이 지금, 잘하고 있습니까?’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씨에게선 과거가 보입니다.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그의 몰이해, 그의 측근들이 보여주는 비리, 너무도 익숙해서 놀랍지도 않습니다. 박 후보는 사업가에게 금품을 요구했던 송영선 전 의원을 제명하는 당의 정치쇄신특위와 윤리위 연석회의에서 “사실이 아닌 얘기들이 왜 이렇게 확산되는지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고 합니다. 송 전 의원이 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돈을 요구하는 내용이 녹취까지 되었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그를 제명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화요일, 박 후보가 성남의 가천대학교에서 연설을 할 때 학생들을 학점으로 위협하며 참석을 종용한 교수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교수들과 송영선·홍사덕씨 등의 행태가 박 후보 지지자들이 사는 법을 보여줍니다.
다행스럽게도 안철수씨와 문재인씨에게선 과거보다 미래가 보입니다. 그들의 얼굴이 그들이 지향하는 ‘새로움’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12월 대통령 선거는 과거와 미래의 싸움, 관성과 혁신의 싸움, 닮고 싶지 않은 ‘반면교사’들과 닮고 싶은 ‘교사’들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 투표하는지가 투표하는 이가 지향하는 세계를 보여주겠지요, 과거인지 미래인지.
김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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