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언론인
2007년 대선 때 조중동 등 수구언론은 노골적으로 이명박 후보 편을 들었다.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그랬다. 경선이 끝난 뒤 박근혜 후보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그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나도 언론계 (생활을) 40년 했는데 절실하게 반성합니다… 막판에는 우리도 (언론들을) 다 포기했어야 했어요. 다 저쪽(이명박 후보) 편인 것 같으니까.” 그의 발언에서 조중동 등의 왜곡과 편파적인 정치 플레이의 혹독함이 어떠했는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2007년 대선 때 나온 수구언론의 ‘박근혜 불가론’은 실제 훨씬 이전 시작되었다. 대표작품이 2005년 9월의 조선일보 인터넷판 ‘조선닷컴’의 기사인 ‘박근혜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10가지 이유’다. “아버지 후광, 알맹이 없는 연예인식 인기”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나열했다.
가장 먼저 든 이유는 “내용은 별로 없으면서 ‘이미지 정치’만 한다” “‘민생정치’의 전도사로 그는 자처하고 있으나, 대선 예비후보로서 민생의 기초인 경제 등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콘텐츠가 없다는 말이다. 조선닷컴은 심지어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미지는 좋은데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전했다.
그밖에 △‘박정희 후광’과 ‘유신공주’라는 비판 △정치지도자라기보다는 연예인 같은 인기 △정수장학회 등 재산 의혹 △스킨십이 부족한 박근혜식 정치 △물러서지 않는 고집 △베일에 가린 사생활 △비정상적인 개인 성장사 등을 ‘대통령 불가론’의 근거로 내세웠다.
조선일보의 이 작품이 올 대선을 앞두고 요즘 새삼 인기다. 인터넷과 에스엔에스(SNS)에서 왁자지껄하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편을 적극 들면서 ‘박근혜의 약점’으로 끄집어냈던 내용들이 이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트위터에서 바로 이 작품을 되치기했는데, 이른바 ‘역관광’이다. ‘조선이 까발린 박근혜의 약점. “아버지 후광, 알맹이 없는 연예인식 인기”’라는 트위트의 ‘역관광’에 반응이 뜨겁다. “조목조목 급소를 때렸네요.” “(조선일보가) 이런 깜찍한 기사를 쓴 적이 있군요.” “2012년 대한민국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상식”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그렇게 ‘박근혜 불가론’을 폈던 조선일보 쪽이 표변하여, 종합편성채널 개국 첫날 방송 때 보인 ‘박근혜 사랑’과 아부는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지난해 12월1일 개국 방송 때 조선일보 종편은 박근혜 의원과의 회견을 내보내면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그리고 그 이후 줄곧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이 지금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요즘 들어서 여론조사 결과가 야권에 조금 유리하게 전개되자 그들의 수구 카르텔의 집권연장 가능성에 조바심을 내면서 야권 후보에게는 매몰찬 잣대를 들이대는가 하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는 적극적인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6일치 조선일보 사설 “‘새누리당 헌 체질’론 12월 대선 보나 마나다”는 적극 훈수의 한 예다. 이 사설은 한편으로는 대선 승리를 위해 새누리당에 심기일전을 세차게 독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4·11 총선 때처럼 여권의 위기의식을 촉발해 수구성향의 여권표를 결집시키고, 야권에는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게 하는 전략도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불가론’을 폈던 조선일보의 놀라운 변신이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 편을 들 당시 박근혜의 치부와 약점을 들추어냈던 그 칼날이 지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트위터에서 일고 있는 역관광의 신바람은 특히 젊은 세대에 치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박근혜 후보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렇듯 적은 늘 가까운 곳, 내 편, 내 안에 있다. 단일화가 지상명령이 된 야권에서도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자기분열, 자만은 내 안에 있는 가장 큰 적이다.
정연주 언론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7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재외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임명장을 주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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