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리더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까? 많은 경우 긍정적 사고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구미시 불산 누출 사고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정작 급박하고 필수적인 조처를 놓치게 된다. 위기를 관리하는 리더는 오히려 ‘부정적 가정’을 해야 한다. 어떻게 ‘부정적’으로 생각해야 위기상황에서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세 가지 가정법(what if)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첫째, “내가 만약 피해자라면…?”이라는 질문. 배우 알 파치노가 뉴욕시장 역을 했던 영화 <시티홀>은 경찰관과 길거리를 지나던 소년이 총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는 숨진 경찰관의 부인과 사망한 소년의 집을 차례로 찾아 위로한다. 그리고 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시장으로서 내가 결코 이겨내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한 경찰관의 죽음입니다. 삶에서 내가 결코 극복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고한 어린이의 죽음입니다.” 비록 영화 후반부에 알 파치노는 정치적 야망 때문에 비윤리적인 일에 연루되어 좌절하게 되지만, 위기상황에서 피해자와 시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번 사태의 피해자인 구미 시민들은 높은 사람들이 와서 악수하고,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는 표정을 짓다 현장을 떠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정부든 구미시청이든 “제가 책임지고 피해자 여러분을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한 사람의 리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런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둘째, “만약 상황이 악화된다면…?”이라는 질문. 위기상황에서는 최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가정해놓고 예방적 조처를 취하는 것이 맞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이번 사고 직후 스스로 대피했던 주민들을 구미시가 ‘간이측정’ 자료에만 근거해 귀가토록 함으로써 2차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간이측정’ 결과와 같은 ‘희망적’ 자료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하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놓고 주민 대피 및 위기 대응 결정을 하는 것이 맞다. 즉 상황이 호전될지 악화될지 잘 모를 경우에는, 더군다나 사람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악화된 상황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맞다.
마지막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이라는 질문이다. 현재 언론은 ‘늑장 조사’, ‘허술한 대처’, ‘총체적 실패’ 등 늘 등장하는 단어를 써가며 보도하고 있고, ‘높은 사람’들은 늘 그렇듯 사고 현장을 다녀갔으며, 구미시청은 언론 보도에 대해 “대책 없다는 비난은 그만!”이라고 외치며, 할 일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이 위기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몇년 전 한 조직에서 발생한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서 부서별로 책임공방과 비난이 계속되자 이를 수습하는 회의를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 내가 한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내가 더 잘 챙겼어야 하는 것은…”이라는 문장을 칠판에 적어놓고, 각자 그 문장을 완성하도록 했다. 물론 미리 최고경영자를 설득해 리더부터 먼저 ‘고백’하게 했다. 그러자 참석자들은 비난을 그쳤고, 함께 발표하는 과정에서 향후 개선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위기상황을 헤쳐가야 하는 리더라면 2007년 영화 <본 얼티메이텀>에 나온 다음과 같은 대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게 제일의 법칙은 최선을 바라되 최악에 대비하는 것이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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