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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멘붕’이 찾아왔을 때 / 혜민

등록 2012-10-26 19:17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살다 보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이 높은 파도처럼 갑자기 밀려들 때가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했을 때, 혹은 큰 상처를 받은 일이 있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일과 관련된 여진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힐 때 말이다. 또는 타인의 많은 요구나 감정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나에게 바로바로 다가와 날카로운 공격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일을 겪게 되면 방문을 잠그고 혼자 있거나, 당분간 모두와 연락을 끊고 조용히 지내고 싶기도 하고, 심할 경우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훌쩍 사라지고 싶어진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빗대어 요즘 사람들은 멘탈붕괴, 멘붕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멘붕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계속 우울하고 그냥 도망가고 싶을 때, 우린 이 난관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는 첫째, 내 마음이 휴식을 할 수 있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변화를 한번에 감당해낼 수 있는 심리적 용량이 정해져 있다. 그 용량을 넘치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과부하에 걸려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멘붕이 찾아왔을 때는 주저앉지 말고 ‘아, 내가 지금 과부하에 걸렸구나’ 생각하고, 그 원인이 되는 환경이나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느끼는 일들을 하면서 안정이 될 때까지 쉬며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주위에 이런 상황에 처한 이가 있거든,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뭔가를 도와주려 하기보다는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는 편이 진정 그를 돕는 일이다.

심리적으로 얼마간 안정이 되어 방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면 둘째, 내 말을 아주 잘 들어주는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그동안 힘들었던 일에 대해 말함으로써 그 감정들을 풀어내는 것이 좋다. 이 과정이 치유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까닭은, 과부하에 걸렸던 부분을 내 안에 그냥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에게 잠시 맡겨놓으며 함께 감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듣는 사람이 관심을 갖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힘들었던 일들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고, 그 혼란스러웠던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 힘들었던 일들이 갖는 나름의 의미를 깨닫기도 한다.

다만 이때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이 나와 아주 편한 관계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식의 걱정이나 자기검열 없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주위에 없다면 심리치료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멘붕이 찾아왔을 때 불교 명상법 중 한 가지인 ‘마음 알아채기 연습’을 해도 효과가 좋다. 우리에게 힘든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 감정들의 파도에 휩싸여 그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닌, 그 감정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 상태를 알아채는 것이다. 그렇게 알아채는 순간, 그 감정의 흐름에 마침표를 찍는 효과가 있어, 그 감정이 나 자신이 아니고 그 감정을 바라보는 고요하면서도 온전한 ‘또다른 나’를 만나게 될 수 있다.

살면서 멘붕의 습격은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멘붕이 찾아왔을 때 나 자신을 잃지 않고, 그 경험으로부터 자신만의 삶의 노하우를 얻어내시길, 멀리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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