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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예수 캠프의 사람들 / 호인수

등록 2012-11-02 19:11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를 포함한 캠프 요원들이지 싶다. 그들은 암울했던 과거와의 단절을 가시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내고 참신한 이미지로 1%라도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하니 24시간도 모자랄 게다.

이번에는 누구를 찍어야 하냐고 묻는 사람이 가끔 있다. 험난한 단일화 과정을 거쳐 최종 후보가 확정되는 걸 보면 저절로 답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말지만, 글쎄 나는 지금 세 후보 중에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지? 그 이유는? 오늘 아침에도 한 후보의 시민캠프를 꾸리는 데 함께해주기를 청하는 지인의 전화를 받고 단일화를 위한 일이라면 그러마고 했다. 나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그 후보의 사람이 되는 것인가? 발뺌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예수 캠프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수 캠프? 내가 지금 어쭙잖게 예수쟁이 티를 내고 있나?

각 대선 캠프의 목표는 동일하다. 수장을 청와대로 보내고 자기들도 그 주변에 포진하겠다는 것이다. 며칠 전 재야 원로들의 원탁회의가 야권의 두 후보에게 ‘이기는 단일화’ 말고 ‘바꾸는 단일화’를 주문한 것은 대권에 눈멀지 말고 국가의 앞날을 생각해서 철저히 마음을 비우고 국민들로 하여금 신명나게 투표하도록 하라는 엄중한 명령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 캠프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 좋은 말이다. 마음을 비워야 이기고, 이겨야 바꿀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아니라 네가 비워야 하지 않겠느냐?” 아무래도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장과는 달리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큰 떡인가 보다.

반대를 포함한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는 조직이나 사회라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박 캠프의 사람이 문 후보를 치켜세운다거나 안 캠프의 사람이 대놓고 박 후보를 지지하는 등의 이적행위까지 방관하거나 두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선거의 패배를 목적으로 침투시킨 상대 후보의 세작이 아니라면 그럴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후보자나 조직을 위해서 마땅히 솎아내야 한다.

내가 속한 교회공동체를 나는 예수 캠프라 했다. 예수 캠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를 수장으로 모시고 날마다 그분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조직이다. 수장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캠프 요원들의 기본 임무다. 문제는 우리의 수장이 2012년 한국의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는 데 있다. 하니 우리는 지금 누구를 밀어 우리의 수장에 버금가는 통치력을 행사하도록 할 것인가? 고민과 심사숙고는 당연하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후보들 가운데 여러 면에서 수장과 가장 닮은 인물을 선택하는 것.

그런데 실제로 우리 캠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원들의 생각이 수장의 뜻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거국면에 접어들면 특히 더하다. 수장은 가난한 이들과 우는 이들의 편인데 캠프에는 부유한 이들과 희희낙락하는 이들의 편에 선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정치도 종교도 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거늘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무얼 배웠기에 수장의 뜻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할까?

한 캠프 안에서도 그렇거니와 대구와 광주가 다르고 서울의 강남과 강북이 서로 다른 게 예수 캠프의 실상이다. 어느 예수, 어느 캠프의 사람들이 진짜일까? 선진통일당의 이인제 의원은 일찌감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손을 잡았다. 국민통합 운운은 개가 웃을 일이지만 굳이 이해하려 들자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가 예수 캠프의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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