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 건물이 철통 보안으로 악명이 높은 모양이다. 불평의 대부분이 주로 배달을 하는 분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시가 급한데 경비실에 들러 신분을 확인하고 출입카드를 받아야 하는 절차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출입카드 없이는 아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없다. 출입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입주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해당 층의 버튼 하나만 눌러지기 때문에 다른 층으로 가야 할 때면 경비실에서 별도의 출입카드를 받아야 한다.
배달 음식은 어쩔 도리가 없지만 성미 급한 택배기사들이 경비실에 물건을 맡겨놓고 가는 일이 종종 있다. 왜 사무실로 가져다주지 않느냐고 따지지도 못한다. 가끔 방문하는 손님들도 대뜸 “이 건물 경비가 왜 이리 삼엄해?”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할 정도니까 말이다.
그날도 택배기사가 두고 간 택배를 찾으러 경비실로 내려갔다. 얼핏 경비실 안쪽에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흉내 낸 듯 쌓아올린 모니터들을 보았다. 잘게 분할된 화면들은 바로 지금 이 시간 건물 안의 동정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출입카드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건물 구석구석 시시티브이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두 대의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주차장과 복도 등이 한눈에 다 보였다. 순간 떠오른 건 동시에 그리고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그분’이었다.
시시티브이의 존재를 알 길 없는 이들은 자연스러웠다. 저 혼자라고 생각한 젊은이는 엘리베이터 거울에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양 뺨을 번갈아 부풀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남의 이목을 잠깐 피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엘리베이터였다. 사무실에서 참았던 말을 동료와 풀기 시작하는 곳도 엘리베이터였다. 엉클어진 머리도 매만지고 흘러내린 바지도 추켜올린다. 지하 주차장에서 뒷모습이 잡힌 한 남자는 급히 걷다가 주차 방지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우리의 사생활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건물 밖 골목에도 얼마 전 시시티브이가 들어섰다. 대낮에도 인적이 뜸한 곳이기는 했다.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팔자걸음으로 걷던 그 길이 이젠 예전 같지 않다. 범죄 예방 차원에서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감시카메라가 달린 전신주 아래에 오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엉킨다.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과연 몇 개의 감시카메라가 있는 것일까. 어느 곳에서는 어린이를 보호하고 어느 곳에서는 치안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불법 주정차를 하는 차들을 내려다보고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이들의 얼굴도 다 찍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는 방심한 내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숨기고 싶은 내 모습이 찍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시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자고 다짐했다. 그런데도 그 아래 서면 혹시라도 죄지은 게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문제는 며칠 전 일어났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아파트 단지를 걸어 들어오는데 별안간 신호가 왔다. 엘리베이터는 꼭대기에 멈춰서 있었다. 생리적인 현상을 참느라 두 다리를 배배 꼬고 발을 동동 굴렀다. 경박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다 반짝 정신이 났다. 감추고 싶은 이런 모습이 여과 없이 보여지고 있을 관리실의 시시티브이가 떠올랐다. 봤을까? 설마, 봤을까?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은 영락없이 <1984>의 윈스턴의 모습이었다. 소리를 줄일 수는 있으나 절대 끌 수 없다. 당이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낮이나 밤이나 작동하는 이 기계를 끌 도리는 없다.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의 사각지대인 모퉁이를 찾아낸다. 그 순간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모퉁이였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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