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도쿄 특파원
한국에도 꽤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일본의 작가(러시아어 통역사) 요네하라 마리(1950~2006년)의 글을 읽다 보면, ‘일본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노골적인 비아냥이 꽤 많이 나온다. 1945년 미국에 무릎을 꿇고, 그 뒤 상당 기간 미국에 국가의 운명을 맡겼던 일본이니 친미적인 행태가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식민지라고까지 하면 좀 과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요네하라의 말을 해설한 듯한 책이 지난 8월에 출간돼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 큰 화제를 낳고 있다. 외무성 국제정보국장을 지낸 마고사키 우케루가 쓴 <전후사의 정체>란 책이다. 이달 초 열린 일본변호사협회 주최 심포지엄 강연에서 그는 매우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하토야마씨가 아직도 총리라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일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키나와 후텐마기지는 현외로 이전되고, 오스프리(신형 수직이착륙 수송기)는 오키나와에 배치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저서에서, 미국이 일본 현대사에서 정치와 외교, 경제에 이르기까지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개입했으며, 그 과정에서 대미 추종이 아닌 자주 노선을 견지한 일본 총리는 어김없이 중도하차했다고 주장한다. 옛날 얘기가 아니라, 지금도 그렇다고 그는 강조한다.
2009년 민주당 정부 출범 이후 동아시아 공동체를 내세우고 후텐마기지 현외 이전을 주장했던 하토야마는 미국과 갈등을 빚다 1년도 안 돼 물러났다. 지난해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된 외교전문을 보면, 외무성 관리들은 마치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후임 간 나오토 총리는 재빨리 미-일 동맹의 복원에 나섰는데, 다시 1년여 만에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탈원전을 주장하다 물러났다. 결국 ‘자민당 노다파’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들어섰다. 미국이 어떻게 일본 정치에 그런 큰 힘을 발휘하는지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마고사키의 주장은 음모론으로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 현대사의 움직임과 부합한다.
눈을 좀더 크게 뜨고 보면, 최근 몇해 동안 일본에서 일어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헌법 개정론’의 확산이다. 자민당이 앞장서고 극우파들이 부채질을 하는 ‘군대 보유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주장은 점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마고사키의 설명을 염두에 두면, 해석이 어렵지 않다. 아시아의 안보-방위 부담을 일본이 상당부분 떠안아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일본이 발맞추려는 움직임일 것이다. 일본 보수파들한텐 보통국가로서 자존심의 회복이라는 소망이 담겼을 것이다.
문제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중국에선 민족주의가 세력을 키우고, 군부와 가까운 시진핑 시대가 출범했다. 일본에선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가 자민당 총재가 됐고, 12월16일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극우파들도 세력을 꽤 키울 것 같다. 센카쿠열도 영유권 문제로 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양국이 더 큰 충돌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해나가는 모습인데, 이를 막을 세력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이 걸음걸이를 살얼음을 밟듯 해야 할 때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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