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BANNER3%%] 아이가 수술을 받고 병실로 올라간 시간은 밤 열한시 무렵, 불 꺼진 병실은 어둑했다. 높낮이가 다른 숨소리 사이로 이따금 뒤척이는 소리와 신음이 끼어들었다. 침대에 달린 개인등 불빛에 병실 윤곽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병실 안쪽까지 좌우로 나뉘어 일곱개의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빈 침대는 없다. 오늘 누군가 퇴원하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도 응급실 한쪽에서 밤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열이 오르는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는 동안에도 아이는 헛소리를 중얼댄다. “……시여.” 무엇이 싫다는 걸까? 축축하게 젖은 수건이? 밥에 든 콩이? 계단을 뛰다 선생님께 혼나고 부동자세로 한참 벌을 선 것이? 아파도 참아야 하는 형이 되는 것이? 이렇게 아픈 줄 모르고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꾀를 부린다고 의심했다. 아파서 제대로 서지 못하는 아이에게 “혹 어린이집 가기 싫어 그런 거면 솔직히 말해, 그럼 엄마가 회사 안 가고 일주일 내내 너랑 놀아줄 테니까.” 아이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짓더니 배시시 웃었다. 놀리듯 아이에게 재우쳐 물었다. “너 꾀병이지? 꾀병 맞지?” 밤이면 왜 통증은 더 심해지는 걸까. 아이의 울음소리, 깜빡 존 모양이다. 우리 아이인가 싶어 화들짝 깼는데 맞은편 침대의 아이다. 얼마나 오래 아팠는지 마음껏 울지도 못한다. 아파서 우는데 우니까 더 아프다. 그르렁그르렁 가래가 끓어오르고 잠에서 깼지만 피곤에 절어 잠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엄마의 짜증이 이어진다. 창가 쪽 아기도 깨어 운다. 울음소리로 미루어 갓난아기이다. 가까스로 잠든 아이들도 소란에 칭얼댄다. 새벽에 몇 번이나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는 모두 잠에서 깬다. 보호자 침상은 한국 여자 평균 키인 내 키에 딱 맞는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다행이다. 이렇게 딱 맞으니 늘일 일도 줄일 일도 없다. 다리라도 좀 들썩일라치면 침상 받침 중 하나가 끽끽 소리를 낸다. 침상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두 손을 배 위에 공손하게 모았다. 절대 아프면 안 된다. 환자답게 아플 권리도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금세 견갑골이 배긴다. 이 정도의 통증은 1일까, 2일까. 아침이 오고 밤새 앓았던 아이들도 잠이 들었다. 대부분이 장기 입원 환자들이다. 인원이 적은 병실로 옮기고 싶지만 여러 달 쌓일 입원비는 감당하기 어렵다. 옆 환자도 석달째라고 했다. 필요한 일용품들이 조금씩 쌓여 자취생 이삿짐 분량만큼 늘었다. 점심 무렵 창가 쪽 젊은 부부가 백일떡을 돌렸다. 아기는 태어난 뒤 바로 이 병실로 옮겨져 이곳에서 백일을 맞았다. 부부의 소망은 돌 전에 귀가하는 것이다. 올해 두어번의 병원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통증 진단의 척도다. 0에서부터 10까지 총 11단계로, 단계를 나타내는 수치 아래 얼굴 표정이 그려져 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경우엔 그림의 얼굴과 아이의 표정을 비교해서 통증 정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진통제 처방을 내린다. 참고로 분만시 통증이 7에서 8이라고 했다. 우리 아이의 표정은 6과 7 사이, 수술 직후부터 쭉 진통제를 달고 있다. 밤에 깨어 칭얼대던 아이의 표정은 8, 웃는 듯 우는 듯 좀처럼 알 수 없는 얼굴이다. 아이는 수액으로 버티고 있다. 씹고 삼키는 식사를 한 지 오래되었다.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짜증을 내던 아이의 엄마 표정은 5. 옆 침상에 석달째 거동 못하는 아이에게 매일 유동식 튜브의 호스를 갈아끼우고 체중을 다느라 번쩍번쩍 아이를 들어올리는 엄마의 얼굴, 그 표정은 11단계 어디에도 없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통증을 참고 있다. 그래서 존경스럽고 그래서 안타깝다. 하성란 소설가 [%%BODYBANNER%%] <한겨레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