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넉달 전에 한 중진학자를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역사에 대한 확신을 갖고 길게 보라.”
결국 이 말은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이어진 탄압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던 노정객은 그렇게 갔다. 민주평화 세력이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 지금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여야 정치권을 보면 마치 선거에 이기면 세상을 다 얻은 것이고, 선거에 지면 당장 세상이 망하는 것처럼 호들갑이다. 역사에 대한 확신 없이 짧게 보는 정치꾼들은 설령 선거로 집권을 해도 시대와 역사를 바꾸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그 핵심은 장기적 안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문제를 고뇌하는 ‘축적된 믿음의 체계’, 즉 신념의 문제다.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억지력을 바탕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억지라는 용어는 냉전시대 핵전략에서 나온 용어로, 북이 핵을 가지면 우리도 핵을 갖겠다는 뜻이다. 박 당선인이 우리도 핵을 보유하겠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다른 선제공격을 의미하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억지가 한-미 동맹을 뜻하는 것이라면 이미 한-미 간에 ‘확장된 억제력’이라는 말이 있는데 굳이 북한에 공격적인 언사를 구사한 까닭이 무엇인지도 해명해야 할 것이다.
박 당선인의 승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북방한계선(NLL) 논란도 마찬가지다. 후보 시절에 스스로 “엔엘엘은 영해선이고, 서북해역은 우리 영해”라는 주장은 과연 적절했던 것인지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 주장을 실천하려면 영해법을 고쳐서 서북해역을 영해로 포함시키고, 국제사회에 이를 선포해야 하며, 유엔에도 바뀐 영해 범위의 개념을 기탁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을 선거 때문에 고의로 영해 논란을 촉발한 것이라면 이는 매우 선동적이고 무책임한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엔엘엘 논란으로 벌어들인 표가 얼마인데, 이제 와서 모른체한다면 곤란하다.
집권하면 청와대에 안보실을 신설하겠다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이 공약은 국가위기관리체계를 선진화하겠다는 발상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안보실패가 과연 안보실이 없어서였을까? 그보다는 북한에 대한 태도, 즉 얕잡아보고 배제하고 무시하다가 역풍을 맞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새누리당은 선거과정에서 그런 현 정부의 실패 추구형 행태를 수없이 반복했다. 게다가 전문가를 배제하고 정치군인이 득세한 이명박 정부의 군 인사는 이미 실패를 내포한 안보 관리였다. 이렇게 되면 어떤 위기관리를 하더라도 항상 한반도는 안보불안 또는 안보실패를 겪어야 한다.
안보논리로 선거를 시작했고, 안보논리로 선거를 마무리한 새누리당이 또다시 병역 이행이 석연치 않은 인사를 안보의 중요 직위에 등용한다면 이 역시 신뢰를 잃을 것이다. 엔엘엘 대화록 논란을 촉발한 정아무개 의원이나 윤아무개 의원의 병역사항을 들춰보라. 6개월, 하루 근무하고 군필자로 행세하고 있다. 그들이 안보를 말하면 말할수록 안보가 더 불안해지는 ‘안보 딜레마’가 바로 박근혜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동북아에는 이제 대외정책에서 가장 공격적인 중국·일본·러시아·북한의 정권이 등장했다. 이 험난한 국제정세의 파도를 넘어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이 모든 문제를 잘 풀기를 기원한다. 선거 때 말한 것처럼 한국의 마거릿 대처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려면 역사에 확신을 갖되 길게 보는 전략가들을 주변에 결집시켜야 한다. 그 성패는 인수위 두달여 기간에 판가름날 것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한겨레 캐스트 #18] <대선 특집> 박근혜 시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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