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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역발상 대북정책 / 이라영

등록 2012-12-26 19:23

이라영 집필노동자
이라영 집필노동자
바야흐로 ‘종북’ 척결 시대가 다가오는 것일까. “100% 대한민국”을 주장하던 박근혜 당선인의 ‘화합과 대통합’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어록이 화려해도 보통 화려한 게 아니다. 투표일 직전인 18일에 쓴 칼럼에는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종북세력의 창궐 시대가 도래”할 것을 우려하며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정치적 이념을 떠나 기본 교양이 의심스럽다. 한반도의 대결을 완화해 동북아의 평화를 구축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할 이 시기에 한국의 보수들은 언제까지 낡은 반공정신에 빌붙어 있으려는 걸까.

얼마 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역발상’ 운운하던데 차라리 대북정책에서 그 역발상을 품었으면 좋겠다. 파란색의 한나라당에서 빨간색으로 바뀐 새누리당은 옷만 새빨갛게 입지 말고 정책에서도 색깔을 바꾸길 바란다. 똑똑한 보수라면 오히려 실용적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유연해질 수 있는 법이다.

미국의 전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대표적인 반공투사였다.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상대 민주당 후보를 공산주의자라 몰아붙이는 이념공세로 이름을 얻었다. 이후 상원에 출마할 때는 상대 여성 후보에게 “속옷까지 붉다”는 막말로 공격하기까지 했다. 의정 활동 중에도 닉슨은 당시 몰아치던 극단적 반공주의인 매카시즘 광풍의 주도자 중 하나였다. 수많은 이들을 소련의 간첩으로 몰아붙이며 반공의 기수로 정치적인 입지를 다져 나갔다.

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자 닉슨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며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또한 소련과도 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정을 체결하며 기존의 냉전 질서를 뒤흔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과거 반공주의자로 다져온 평판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빨갱이’라는 공격으로부터 닉슨은 자유로웠고 유연하게 공산 진영에 대한 화해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화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1972년 박정희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바로 4년 전인 1968년 북한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1·21 사태가 있었음에도 분단 이후 통일과 관련하여 최초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개인적인 복수의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국제 정세에 맞춰 방향을 선회했다.

보수적인 반공주의자인 닉슨이 냉전 종식을 위해 보여준 외교행보나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북쪽과 공식적으로라도 평화를 만들려는 박정희의 시도는 반드시 이념과 가치에 따른 선택은 아니었다.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노선 변경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을 박근혜 당선인을 비롯한 한국의 ‘애국 우파’들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쓸데없는 색깔론에 시간 낭비 하지 말고 차라리 국익을 우선시하는 보수의 본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현 정부 5년간 대북관계는 얼어붙었다.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었고 개성공단 사업도 난항을 겪었다. 한반도는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간 형국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재집권하게 되어 차후의 대북관계가 걱정스럽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명박 정부와도 꾸준히 거리를 두어왔다. 대북정책 또한 차별화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도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일컬어 종북세력이라 하지 않으니 닉슨처럼 색깔론에 대한 걱정 없이 화해와 협력의 대북관계를 추구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박정희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산 중 하나인 남북공동성명의 가치를 이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박근혜 당선인의 역발상을 기대한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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