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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세대차 / 하성란

등록 2013-01-04 19:18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그럼 퇴원하겠습니다”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간호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남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또 시작이다, 라는 표정인데 그는 알고 있다. 이젠 더 말릴 수 없다는 걸. 물론 퇴원할 수 없다. 아이는 걷지도 못하는데다 2주 이상 항생제를 맞아야 한다.

정형외과 병동에 자리가 나면서 병실을 옮겼다. 세로로 길쭉한 병실엔 침대가 둘, 창가 쪽 침대에 누운 돌쟁이 아이가 바락바락 울고 있었지만 방문객과 보호자들로 북적이던 다인실에 비할 바 아니었다. 다음날 그 아기가 퇴원했다. 이제 창가 쪽 자리로 옮길 수 있었다. 언제 퇴원할지 알 수 없는 아이도 덜 지루할 것이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병원 규칙상 한번 자리잡은 침대는 옮길 수 없다고 했다. 병실로 돌아와 창가 자리를 보았다. 겨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인데 규칙 때문에 갈 수 없다. 지금껏 규칙을 위반한 적은 별로 없었다. 좀처럼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다시 관계자를 찾았다. 그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했다. 2주 이상 입원해야 하니 사정을 봐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예닐곱명이 입원한 다인실의 경우 종종 창가 자리를 두고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그럴 만한 이유였다. 누구나 창가를 좋아한다. 창가 자리에 앉아 식사하려면 따로 예약을 해야 한다. ‘뷰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아파트의 매매가가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은 다인실이 아니다. 창가 쪽 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사람이 없다.

결국 병원 쪽에서 행정상의 이유를 들었다. 모든 것이 다 병원 쪽의 편의 때문이었다. 그동안 환자에 대한 처우와 과잉 진료 등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병원에 오면 늘 환자는 약자란 생각이 들곤 했다. 홧김에 그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럼 퇴원하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창가 자리로 옮겼지만 울적했다. 되도록 불화하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몇 번의 항의로 진이 빠져버렸다. 이런 식의 으름장은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어른들에게 눈살을 찌푸린 적도 있었다. 한편 내 속의 이타적 유전자가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창가 쪽에 오고 싶어하는 다른 사람들은?”

옆 침대에 많은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머물다 갔다. 올겨울 첫눈도 병실에서 맞았고 대선 개표 방송도 휴게실에서 지켜보았다. 대선 결과를 두고 세대차란 말이 부각되기도 했다. 지역감정에 이어 이젠 세대감정까지 느껴야 하는 건가, 누군가 세대 간의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퇴원을 앞둔 무렵 골절 환자가 새로 입원했다. 집안의 첫 손자인 듯 조부모가 총출동했다. 퇴원 짐을 꾸리는 동안 아이의 할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창가 쪽이 한적해서 좋겠다.” 병원의 규정을 말씀드렸다. 영 납득이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다인실의 예를 들었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그게 뭔 문제인가? 병실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 순으로 옮기면 되는 거지.” 아, 그렇구나.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병원 쪽에서 그 해답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 약속이 있다면 창가 자리로 가겠다고 무턱대고 욕심을 부릴 환자와 보호자는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간호사실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돌아왔다. 병원 규칙이란 말을 듣고 돌아섰을 것이다. “아, 이해가 되지 않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돼.” 병실을 왔다 갔다 잠깐 고민하던 그분이 다시 간호사실로 발길을 옮겼다. “아버님, 그냥 두세요.” 며느리가 안절부절 그 뒤를 쫓아갔다. 그분의 모습에서 세대차라는 말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았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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