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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21세기 법가 리더십 / 박민희

등록 2013-01-31 19:25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2200여년 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천하를 얻은 비법은 법가 사상에 기초한 강력한 개혁이었다. 법가 통치로 군주권을 강화하고 부국강병을 이룩한 진은 라이벌 6개국을 파죽지세로 무너뜨렸다. 하지만 통일 이후 진시황의 전제적 통치가 백성들을 과도하게 억누르며 획일적 통치를 강요하자 곳곳에서 반란이 벌어지면서 진 제국은 무너졌다.

한국과 중국을 새로 이끌어갈 두 지도자의 행보를 보면서, 법가적 통치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중국에선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가 연일 부정부패 일소와 관리들의 기강 확립을 외치고 있다. “부패 관리를 처벌할 때 호랑이(고위 관리)와 파리(하위직)를 모두 때려잡아야 한다”는 그의 서슬 퍼런 호령에 부패 관리들의 낙마가 잇따르고 있다. 관료사회의 허례허식과 공금 낭비를 금지한다는 시 총서기의 명령에 고급 바이주 값이 급락하고, 음식 남기지 않기 캠페인도 벌어진다.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의 “명철한 군주는 뭇 신하로 하여금 법을 벗어날 궁리를 못하게 하고, 법 안에서는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여, 모든 행동은 법에 따르지 않는 것이 없게 한다”(<한비자> 유도편)는 군신론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 고속성장의 과실을 가장 크게 움켜쥔 특권층이 강고한 이익집단으로 변해 개혁에 저항하는 상황에서, 시진핑은 강한 법가적 리더십을 통해 이를 돌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반부패 캠페인이 통치집단의 특권을 내려놓는 정치개혁, 국민과 사회의 힘을 강화하는 제도적 변화로 나아가지 못하면, 중국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숙청 운동으로 끝나버릴 우려도 있다.

시진핑이 법가적 리더십과 함께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가 역사의 교훈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는 전례 없이 최고 지도부의 일상을 공개하고, 언론 통제에 저항해 일어난 <남방주말> 기자들의 파업 사태를 타협으로 해결하는 등 사회 통제의 울타리를 느슨하게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박근혜 당선인의 최근 행보에선 한비자의 또다른 구절이 겹쳐 보인다. “군주는 자신의 속뜻을 신하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아야 한다… 군주가 좋고 싫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신하는 속내를 드러내게 된다. 군주가 지략과 지혜를 드러내지 않으면 신하들은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다.”(<한비자> 주도편)

법가적 리더십은 군주의 세(勢)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철저히 1인한테 집중하고 군주의 손발이 되어 일하는 관료기구를 통해 민중에 대한 통치를 강화한다. 2인자를 두지 않고 국가 통치의 주요 사안을 홀로 결정하며, 인수위 회의에서도 “제가 약속하면 여러분들이 지켜야 한다”고 호령하는 박 당선인의 모습에선 법가 통치의 고수를 보는 듯하다. 국민들이 용납하기 힘든 행위들이 드러나 총리 후보자가 사퇴했는데도 “망신주기 청문회”를 탓하는 모습에선, 그가 지도자와 국민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군주가 국가를 사유화하던 시절에 통하던 법가적 리더십은 현재의 사회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의 애독서라는 풍우란(펑유란)의 <중국철학사>를 읽다가, “오로지 군주와 국가의 관점에서 정치를 논한 사람을 법가라고 불렀다”는 구절에 밑줄을 그어본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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