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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준비’도 없고, ‘여성’도 없다

등록 2013-02-20 19:17수정 2013-02-21 10:50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어느 시인은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회초리를 맞은 기억을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잘못했을 때 어머니는/ “내가 널 낳은 죄로 나도 맞아야 돼” 하시며/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매질 하셨지/ 내 종아리 한번 때리고/ 어머니 종아리는 두번 때리셨지/ (…) 어머니의 회초리가 이제사 그리운 건/ 이젠 영원히/ 회초리를 꺾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박의준 <어머니의 회초리>). 비단 이 시인뿐이랴. 자식의 잘못을 엄히 나무라면서도 속으로는 한없이 눈물짓는 가슴 여린 여성들은 한국의 모든 어머니 상이기도 하다.

새삼스럽게 어머니의 회초리를 떠올리는 까닭은 다른 게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유난히 ‘어머니론’을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등을 통해 국민에게 던진 국정운영 메시지가 ‘법치 확립’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법치주의의 본래 뜻이야 권력자의 자의적인 지배를 배격하고 법에 의해 국가권력을 제한·통제한다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법치주의란 말은 국민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의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법치는 결국 회초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의 회초리는 어떤 것일까. ‘자신의 종아리 두번 때리는’ 회초리, 상처 난 자식의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눈가엔 이슬 맺히는’ 법치가 될 것인가. 아무리 봐도 그런 자애로운 법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내건 ‘준비된 여성대통령’ 구호는 여러 반론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준비’는 상대적으로 정치 경력이 짧은 상대편 후보에 대한 비교 우위로 다가왔고, ‘여성대통령’은 섬세하고 사려깊은 국정운영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했다. ‘어머니와 같은 간절한 마음, 어머니와 같은 강인함, 따뜻한 섬세함’ 등의 표현도 많이 등장했다. 박 당선인의 승리에는 유권자의 정서를 파고드는 이런 구호도 톡톡히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여성’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이 없다. 인사와 정부조직 개편 등의 발걸음이 곳곳에서 뒤엉키면서 정권 출범을 코앞에 둔 시점까지도 파열음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그동안 무엇을 준비해왔다는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여성의 실종’은 더욱 실망스럽다. 그것은 단지 장관 후보자 중 여성이 두 명에 그쳤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우리 앞에 놓인 시대적 과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동안 쌓인 갈등과 앙금의 해소, 원망과 대립의 벽을 허무는 것이야말로 첫째다. 그리고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여성이 적격이라는 기대가 분명히 존재한다. 여성은 곧 생명이고 관용이며, 타협과 공존, 화해를 뜻한다는 관념도 부지불식간에 널리 퍼져 있다. 대선 과정에서 박 당선인을 지지했던 김지하 시인 식의 표현을 빌리면, 여성에게는 깊은 상처와 고통을 삶의 능력으로 승화시키는 원천적 힘이 있으며, 여성을 통해 ‘해원상생’(解怨相生)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 당선인이 하는 모양새를 보면 해원은커녕 다시 새로운 원망과 한숨을 쌓아가는 형국이다. 통합이니 탕평이니 하는 말은 아련한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됐다. 색깔론과 지역감정 조장 발언자,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수사 검사 등 문제적 인물들을 곳곳에 중용하는 모습을 보면 상생과 공존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서글프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5년 내내 목도한 것이 법치의 범람과 과잉이었는데 또다시 법과 원칙의 확립이 우선적 국정지표로 거론되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준비된 여성대통령론’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한낱 사탕발림이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박 당선인은 그때의 약속과 지금 국민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잘 비교해보기 바란다. “차라리 그냥 펑펑 우셨으면” 하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가수 김도향씨의 노래와 함께 정감있게 풀어낸 텔레비전 광고 ‘어머니의 나라’ 편을 다시 시청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밀실의 드높은 용상에서 내려와 국민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기 바란다. 그래야 국민을 따뜻하게 보듬든, 가슴 아프게 종아리를 때리든 할 것 아닌가. 국민이 원하는 ‘여성대통령’은 결코 ‘차도녀 대통령’이 아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관련영상] ‘낙제점’ 박근혜 인사 (한겨레캐스트#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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