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종교학
살면서 한 번이라도 ‘나는 이곳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왠지 이곳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 말이다. 사람들과 말을 섞고 친해지고 싶어도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지고 스스로 주눅이 들어서 결국 그들의 이야기를 변방에 서서 조용히 듣고만 있는, 그런 외로운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런 문제로 내게 상담을 청해오는 학생들이 많다. 특히 미국에서 비주류라 할 수 있는 피부색이 다른 소수인종이거나,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했거나, 아니면 홀로 유학 온 학생, 몸이 평균보다 너무 크거나 왜소한 학생, 동성애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 학생 등, 이들은 주류에 의해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같은 장소에 함께 있어도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 ‘여기에도 내가 마음 둘 곳이 없구나’ 하고 스스로 초라해지는 경험은 우리를 참 아프게 한다.
내 삶을 뒤돌아봐도 그런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저명한 미국 학자와 학회 후에 만나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도 술과 함께하는 대화에 끼지 못해 자리를 같이한 동료 교수들로부터 소외당한 채 혼자 조용히 물만 마셨던 기억이 있다. 교수 임용을 받을 때도 백인 친구들과 달리 성직자가 종교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학문과 개인적 신앙을 구분해 가면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지를 면밀하게 심사받았다.
그런데 이처럼 주류가 아니라서 힘들다고 느낄 때,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해준 계기가 있었다. 종교철학을 전공한 마음 따뜻한 대학원 선배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비주류라는 점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자랑스러워하면 그 점이 오히려 큰 장점이 될 수도 있어.” 그러면서 선배는 20세기 서양철학에 큰 획을 그었던 사상가들을 예로 들었다.
해체주의 철학의 거장, 자크 데리다의 경우는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아랍어를 하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차별을 받아야 했다. 현대철학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은 미셸 푸코도 사회에서 차별받는 동성애자였고,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을 써서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한 에드워드 사이드도 아랍계 기독교인이라서 고향인 팔레스타인에서도, 또 나중엔 미국에서도 소수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비주류라는 사실을 약점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장점화했다. 비주류였기 때문에 똑같은 상황을 봐도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고, 그런 통찰력은 그들만의 철학을 완성하는 데 엄청난 밑거름이 되었다.
선배의 말을 듣고 나니, 소수인일수록 주류처럼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강박 때문에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연히 위축되고 고립시켰던 것은 아닐까. 주류와 다른, 나름 개성 있는 내 모습이 볼수록 괜찮다고 느끼면서 그냥 좀 편해질 수도 있었는데. 자신감 없이 주변인으로 남아 왜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느냐고 속으로 피해의식을 키울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모습을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그들을 내가 먼저 인정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약점이 강점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처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모습을 스스로 편안해하고 사랑할 때,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둘도 없는 특별한 밑거름으로 변한다.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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