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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그날 이후 / 하성란

등록 2013-03-08 19:23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대구는 지하도가 발달해 있다고 대구에 사는 친구에게 들었다. 추위도 추위려니와 한여름이면 걸어다닐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뜨거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숙소에서 중앙로역까지 다시 반월당역으로 연결된 긴 지하도를 걷자니 그 말이 실감되었다. 지하상가의 쇼윈도에는 봄이 무르익었다. 지상의 꽃샘추위는 잠깐 잊었다. 무엇보다 수시로 나타나는 횡단보도가 없어 좋았다. 잠깐 딴생각이라도 할라치면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도 없었다.

2월18일, 전날과 다름없이 중앙로역까지 걸었다. 며칠 출장 온 사이 지하철 노선도는 물론이고 낯선 지명이 조금씩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보고 싶은 곳도 늘었다.

중앙로역 개찰구 앞이 전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설치작품처럼 보이는 꽃들이 놓이고 중간중간 사진이 전시되었다. 두어 발짝 앞엔 헌화하는 곳도 마련되었다. 첫번째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전소되어 철골만 남은 흉측한 전철 사진이었다. 그제야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10년 전, 2월18일 그날이….

신변을 비관하던 한 사내의 방화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다쳤다. 지하철 환풍구 위로 검은 연기 기둥이 치솟았다. 이제나저제나 누군가 구조되어 올라오기를 기다렸지만 지하철 출입구 계단 위로는 검은 연기만 새어 올라왔다. 과연 저 아래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있는 걸까. 아비규환일 그 현장은 상상조차 힘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 바로 중앙로역이라는 걸 까맣게 몰랐다. 그저 넓고 편리한 지하도에 감탄만 하고 있었다. 당시 그 사고 현장을 그대로 보존할 계획이라던 말이 떠올랐다. 대체 그곳은 어디에 있는 걸까. 역 어딘가에 있다면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그 처참한 현장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날의 열기로 사물함이 녹아내렸다. 검게 그을린 벽에 희생자 가족은 애끓는 마음을 글로 써놓았다. 보고 싶다. 미안하다. 그 글 속에 있는 여자아이의 이름. 살아 있다면 몇 살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그곳을 통곡의 벽이라 불렀다. 청소하는 분이 저기 어디쯤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벽으로 가려놓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희생자들의 마지막 통화 내용이 패널에 옮겨져 있었다. 192명의 희생자 중에는 결혼을 앞둔 이도 있었고 어린 딸을 둔 엄마도 있었다. 명문대학에 입학해 한창 꿈에 부푼 여학생도 있었다. 연기로 질식해가는 와중에도 노모를 걱정하는 아들, 아들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불효한 아들을 용서해달라고, 건강하시라고. 몇 분 뒤에 만날 연인에게 자신은 못 간다고, 기다리지 말라고, 잘 살라는 말을 남긴 젊은이도 있었다.

마지막 말, 긴박했던 그 상황이 떠오르는 한편, 죽음을 앞두고 오히려 담담해진 이들의 육성에 또 한번 놀란다. 죽음 앞에 그들은 의연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사랑한다는 말. 평소에 쑥스러워 아끼고 잘 쓰지 않았던 말.

10년, 희생자의 가족에게는 어떤 시간이 흘렀을까. 마지막으로 전해들은 딸아이의 목소리에 수시로 잠이 깰지도 모른다. “아빠, 뜨거워, 뜨거워…” 몸에 난 화상 자국과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그 현장에서 탈출하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추모제를 취재 나온 기자의 말을 들었다. “시민들의 관심이 너무 저조합니다.”

몇 계단만 올라가면 불빛 휘황한 지하도가 펼쳐진다. 조금 더 걸으면 전국에서 가장 넓다는 지하 광장이 나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10년 전 일을 까마득히 잊은 듯하다.

다음날 대구를 떠나면서 다시 중앙로역으로 왔다. 헌화 장소는 그대로였다. 헌화하지 못한 국화꽃이 잔뜩 쌓인 채 시들어가고 있었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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