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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군종제도를 다시 생각한다 / 호인수

등록 2013-03-22 19:19수정 2013-03-22 19:21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곽병찬 <한겨레> 논설위원의 죽비(3월19일치 칼럼 ‘조롱받는 신’)를 맞고 우리나라의 군종제도를 다시 생각한다. 나는 2007년 10월에 한국천주교회가 제정한 군인주일에 즈음하여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썼다.

“현행 군종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내 생각은 매우 단순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을 먼저 죽여야 하는 것이 군인의 임무라면 제 목숨을 내놓아 벗을 살리는 것이 ‘예수의 사람’의 임무다. 그중에도 사제는 골수분자다. 또 하나 있다. 군대사회는 명령과 복종만 존재한다. 일사불란한 수직사회다. 거기 철옹성 같은 유대교 율법과 체제에 도전한 예수의 정신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암만 봐도 군복 속의 로만칼라는 어울리지 않는 억지 그림이다.”(졸고 ‘군복과 로만칼라, 궁합이 안 맞는다’에서)

한 군종 출신 사제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군종사제로서 나는 사병들을 위해 일한다고 애를 썼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고 지휘관의 의도에 따라 말 그대로 종교행사만 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사병에게 세례를 주느냐가 주된 관심사였다. (중략) 개방적인 군사문화를 위하여 군종제도를 폐지하고 민간인 사제에게 기회를 넘기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한국종교와 양심적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박창균 신부)

나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가톨릭과 개신교 성직자들의 요청에 의하여 만들어진 현행 군종제도는 변화된 새 시대에 맞도록 수정이 필요하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 사제의 신분으로도 얼마든지 군인사목이 가능하다, 우선 교회 안에서 찬반 토론이라도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바란다고 간곡히 호소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반응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는 교회가 단수 추천한 군종사제의 사상검증에서 3명이 탈락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탈락자의 빈자리에 성향이 다른 대타를 재추천하고 선발하는 것으로 가볍게 덮어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새 교황의 탄생이라는 세계적인 빅뉴스의 그늘에 사장되어도 섭섭지 않은 하찮은 이슈가 아니라 명확히 정립되어야 마땅한 사제의 존재 이유에 관한 문제다. 과연 한 사람이 사제이면서 동시에 군인일 수 있는가? 한 사람이 교도관인 동시에 재소자일 수 있는가, 라는 물음과 같다. 나를 바쳐 너를 살려야 하는 그리스도교의 사제가 내가 살기 위해서 네게 총을 겨눠야 하는 군인, 그것도 자원하는 장교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사제로서의 삶에 충실하려면 군인의 임무에 소홀할 수밖에 없고 용맹한 군인이려면 사제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결국 군종사제란 어느 쪽도 아닌, 어정쩡하고 슬픈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래도 되나?

다시 묻는다. 사제가 재소자를 능률적으로 사목하기 위해서는 교도관이 되는 것이 필수인가? 경찰관 사목자는 경찰공무원이 아니어도 무방한데 왜 군인 사목자는 꼭 현역 군인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사제가 편의에 따라 자신의 신앙과 소신을 접고 질문자가 원하는 정답(?)을 외우면서까지 장교 계급장을 달아야 하는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과연 사제에게 요구되는 순교정신이란 무엇인가?

이참에 한국천주교회는 현행 군종제도를 면밀히 재검토하기 바란다. 신학적인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신학생 시절에 남들처럼 병역의 의무를 다했으나 자의반 타의반 군종으로 선발된 젊은 사제들은 봉사와 순명이라는 명분 아래 또다시 최소한 4년을 복무해야 한다. 군대를 두 번씩 가고 싶은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나? 개신교·불교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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