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지난해 여름, 이해인 수녀님께서 아름다운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포장한 시집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작은 기도>라는 제목의 시집을 감싸고 있는 손수건 매듭에는, 수녀님께서 아침에 수녀원을 산책하시다 직접 따셨다는 백색 치자꽃이 함께 묶여 있었다. 수녀님의 시집을 선물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정성 어린 손수건 매듭과 은은한 향의 치자꽃이 함께하니 선물 자체가 한 편의 시와도 같은 여운이 있었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 찾아오니 수녀님 생각이 나 시집을 열어 한 편씩 아껴가며 다시 읽고 있는 요즘이다. 그중에서도 몇 번을 읽어도 새삼스런 감동을 주는 구절이 있다.
“감사만이 꽃길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 나는 길입니다. 기도 한 줄 외우지 못해도 그저 고맙다 고맙다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 날 삶 자체가 기도의 강으로 흘러 가만히 눈물 흘리는 자신을 보며 감동하게 됩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평생 글을 모르는 까막눈으로 사셨지만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셨던 친할머니가 생각나 마음이 짠해 온다. 어쩌면 어려운 경전을 많이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평소에 꾸준히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성스러움으로 다가가는 더 빠른 문이 아닐까 싶다.
근래에 긍정심리학 연구가 발전하면서 서양 심리학자들 사이에 인간의 행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람의 심리적인 이상이나 병과 같은 문제들을 주로 연구했던 과거에 반해,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연구 주제로 삼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로버트 에먼스 교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일주일마다 다섯 가지 감사했던 점을 찾아 간단한 일기를 두 달 동안 쓰게 했다. 이 실험 결과, 감사 일기를 쓰고 난 뒤 행복도가 25% 상승함과 동시에 마음은 긍정적이 되고 건강 이상도 덜 찾아오며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운동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감사한 마음을 내는 것은 잠을 깊게 자는 것에 도움이 되고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에도 효과가 있으며,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좀더 친절해지면서 삶의 만족도가 상승한다고 한다.
또한 켄터키주립대의 네이선 디월 교수는 감사하는 마음을 연습하면 똑같은 스트레스 상황이 찾아와도 감사하는 마음을 연습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그 영향을 상당히 적게 받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곧, 감사하는 마음은 외부의 스트레스로부터 보호막을 형성해서 웬만한 것이 쉽게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심리적 저항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감사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서 펜실베이니아대의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감사하는 마음을 짧은 글로 써서 상대방 앞에서 좀 쑥스럽더라도 천천히 읽어보라고 제안했다. 이런 행동이 우리의 행복감을 증대시키고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트위터에서 많은 분들이 나에게 고민 상담을 하며 우울과 무기력함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한다. 또한 그들의 고민의 상당수는 타인을 내 마음에 맞게 조정하고 싶은데 그것이 되지 않아 힘들다고들 한다. 나 또한 수행이 많이 부족해서 세상의 경계에 끄달리기도 하고 세상과 다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변을 살피면서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후 감사한 마음을 담은 안부 이메일을 보내고 나면 하루 내내 행복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지금 잠시 30초만 눈을 감고 고마운 일 딱 세 가지만 떠올려보자.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다치지 않는 향기 나는 꽃길을 걷는 봄날이 되시길 소망한다.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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