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1999년 피시통신으로 장편소설을 연재했다. 매일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올리고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은 뒤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발목이 잡혀 십만원이 넘는 통신료를 물었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있었지만 만원 이만원에 벌벌 떠는 주부이기도 했다. 피시통신과 접속하고 있을 때면 ‘주부작가’라는 현실이 실감되곤 했다.
소설을 연재하면서 막 피시통신에 눈을 떴지만 이미 그 시절 피시통신은 서서히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피시통신으로 알게 된 ‘방가방가’ ‘하이룽’ 같은 말들을 현실에서 마구 남발하는 재미에 빠져 있기도 했다.
컴퓨터가 있었지만 오로지 문서편집 기능만 썼으니 ‘컴맹’이나 다름없었다. 피시통신 연재가 결정되자 담당자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녀의 별명은 ‘찌니’였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 전화선을 연결했지만 피시통신의 상징이랄 수 있는 파란 화면이 뜨지 않았다. 컴퓨터 사양이 너무 낮은 건 아니었을까, 결국 컴퓨터 본체를 끌어안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광활한 신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컴퓨터 수리점을 찾아 무거운 본체를 번갈아 들고 도로를 따라 걸었다. 속도를 내며 달리는 차들 때문에 우리는 둘 다 먼지를 뒤집어썼다.
독자들의 반응을 그때그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어디선가 말은 했지만 사실 좀 무서웠다. 연재를 올린 다음날이면 재깍 게시판에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여차하면 소설의 결말도 독자들의 뜻에 따라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들었다.
그때 그 게시판의 글을 한참 뒤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사이 회사가 바뀌면서 정보들도 몇 차례 옮겨진 듯했다. 우리들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게 글들은 정확했고 따뜻했다.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했다. 한마디로 ‘개념 있는’ 글들이었다.
아무래도 싸지 않은 통신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통신료를 결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본인 확인 과정도 거쳐야 했다. 동호회를 중심으로, 재야의 전문가들이 모여든 덕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반듯한 게시판에 튀는 두 인물이 있었다. 찌니와 째니.
‘찌니’의 별명이 왜 찌니인지 그때 알았다. 아픈 곳을 찌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찌니, 찌니가 찌른 곳을 또 짼다고 해서 째니. 앞서 소설을 연재한 선배 소설가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열혈 독자이면서 신랄한 독자들이었다. 그들은 콤비처럼 둘이 움직였다.
찌니는 그 사이트의 담당자였다. 사이트의 활성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다녀가면 잠깐 논쟁이 붙기도 했다. 게시판에 시간차를 두고 떠오르던 글을 한 줄 한 줄 고대해가며 읽곤 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대화가 끊길 때도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접속 중에 전화는 늘 통화 중이었다. 통화가 되지 않아 애가 단 어른들에게 꾸중을 듣는 일도 속출했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오던 피시통신도 이제 모두 사라졌다. 우리의 관심은 그 훨씬 전에 사라졌다. 우리가 게시판에서 나누었던 대화들은 옮겨가며 보존되었다가 지금은 아예 사라진 듯하다. 찌니와 째니.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오래전에 그들과도 소식이 끊겼다. 어쩌면 악플과 그 폐해에 가장 속상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신랄함이 그립다. 찌니가 찌르고 째니가 째줄 때 아프면서도 후련했다. 뭔가 막힌 곳이 뚫리는 것 같았다.
피시통신의 시대는 길게 가지 않았다. ‘월드와이드’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는 경계를 알 수 없는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많던 찌니와 째니들도 우주의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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