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공지영 작가의 <한겨레> 연재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다가 문득 여러 달 전에 받은 김영수(가명)님의 편지가 떠올랐다. 여기에 그 일부를 옮긴다.
“(…) 수도회 성소자(수도자 지망생) 시절, 어느 분원에 1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곳엔 시설 전체를 담당하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계셨어요. 그분은 손가락이 5개가 아닌 4개였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저는 그분이 출근하기 전이나 낮 시간에 틈틈이 짬을 내서 그분이 맡은 일의 3분의 1 정도를 대신 해드렸습니다. 나중에야 그분은 제가 도왔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고마워하셨지요. 그러면서도 제가 일하는 거 원장님이 알면 당신이 혼난다고 손사래를 치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원장님이 아주머니 혼내면 제가 원장님을 혼낼 테니 걱정 마시라고.
날씨가 스산한 어느 늦가을 날,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청소나 세탁 등 궂은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들 4분이 식당 옆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뭐 하시냐, 식사하러 들어가시자고 했지요. 그런데 그분들이 눈치만 슬슬 보며 말씀을 안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아, 무슨 사연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말씀 안 하시면 저도 안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한 분이 조심스레 말씀하셨습니다. 주방장이 신부님 수사님 수녀님 직원 및 시설 입소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그분들이 다 드시고 나면 그때 먹으라고 지시했다는 거였습니다. 제가 봐도 그 시설의 식단은 훌륭했지만 그동안에 그분들은 늘 남들 다 먹고 남은 음식을 드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딱한 사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는 주제넘게도 곧바로 원장 수사님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리고 그분들도 우리와 똑같이 한자리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실 것을 간곡히 청했습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저는 식당에서 아주머니들이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은 채 신부님 수사님들과 다른 직원들 사이에 같이 앉아 활짝 웃으며 식사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와 마주친 그분들의 눈엔 고마워하시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가슴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저의 25살 때의 이야깁니다. (…)”
내게 처음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그는 현재 10년이 넘는 징역형을 받고 복역중인데 신문에 실린 나의 칼럼을 읽었노라며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아직 1년이 안 된 인연이다. 그래선가? 나는 생면부지의 수도자 출신인 김영수님에 대하여 궁금한 게 너무 많다. 그가 지금 몇 살인지, 무슨 연유로 장기수가 되었는지, 감옥엔 언제 들어갔는지, 언제까지 옥살이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여태껏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으나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었고 나도 캐묻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가 아무 수도원 소속 수도자였다는 것은 알게 되었으니 수도원과 수사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다가 불현듯 그의 편지가 생각난 것이다.
성소자라는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일용직 노동자들의 서글픈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감히 장상에게 달려간 아름다운 측은지심의 소유자가 이 사회에서 단호히 격리되어야 할 흉악무도한 범죄자라니! 그건 분명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그간의 편지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정치범이나 양심수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유전무죄의 시대에 무전유죄?
그도 이 글을 읽을 것이다. 사전에 본인의 허락을 받지 않아서 찜찜하다. 그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조만간에 면회라도 갈까? 고해성사를 권할 생각은 없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 고해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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