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존 쿠체의 장편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에는 작가를 엄마로 둔 아들이 등장한다. 아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어릴 적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매일 아침이면 엄마는 글을 쓴다는 이유로 그와 동생을 떼어놓고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가버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엄마에게 갈 수 없었다. 잠긴 문 앞을 서성이며 칭얼대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불행하고 외롭고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서른셋이 될 때까지도 엄마가 쓴 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것이 어릴 적 글을 쓴다고 자신들을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 엄마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 가산점제’에 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 장면이 떠올랐다. 소설 도입부의 짧은 장면을 지금까지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책을 읽을 무렵 내 처지는 소설보다 더 나쁘면 나빴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일을 막 시작했는데 돌이 지나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아이를 친정에 맡겼다.
남자 작가인 쿠체가 어떻게 그 감정을 콕 집어낼 수 있었을까라는 감탄은 잠시, 걷잡을 수 없이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이를 처음 친정에 맡기던 날이 떠올랐다. 혹시나 따라간다고 투정부릴까 봐 슬그머니 일어나 현관으로 나오는데 거실 쪽에서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밤새 엄마를 찾지 않고 잘 잤다고 이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고 전화를 걸어온 친정엄마 옆으로 아이의 목소리가 새어들어왔다. “어마, 어마.”
뭘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를 떼어놓은 걸까. 갑자기 하고 있던 모든 일들이 하잘것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 무렵 세 살까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적어도 세 살이 될 때까지 엄마 손에서 자라야 아이의 정서가 안정된다는 요지의 책들이 연달아 출간되어 불안하기까지 하던 차였다. 당장 아이를 데려올 것 같던 기세도 오후가 되자 흐려졌다. 퇴근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아이는 그렇게 18개월을 외할머니와 생활했다. 친정집 동네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엄마”보다는 “할미”라는 말이 더 입에 붙게 되었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자신의 꿈을 접는 친구들을 많이 보아왔다. 이른 아침 아파트 광장에서 아이를 데려다 주느라 젖은 머리카락을 말릴 겨를도 없이 종종거리는 엄마들과 부딪힌다. 잠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서둘러 한 화장은 오늘도 하얗게 들떠 있다. 아이를 데려와 함께 생활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죄책감부터 밀려온다. 그땐 왜 그랬을까, 내 손으로 아이를 길러야 했는데… 여전히 후회막급이다.
후배들이 가끔 질문을 해온다. 양육과 일, 두 가지에 늘 끌려다니는 나로서는 결혼하지 않은 후배들에게는 결혼하지 말라고,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후배들에게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머리부터 흔든다.
왜 양육을 엄마에게만 떠넘기는지 모르겠다. 일을 선택한 많은 엄마들이 가지게 되는 죄책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는다. 세 살까지의 양육이 한 개인의 인성에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그때까지만이라도 부모가 번갈아가며 돌볼 수 있도록 지켜봐줄 수는 없는 걸까. 남편들의 육아휴직, 아이와 같이 출퇴근할 수 있는 직장 안 보육시설 확충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을 텐데….
18개월 엄마와 떨어져 있던 그 시기가 훗날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잘 모르겠다. 마흔이 넘어도 엄마가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던 그날을 기억하고 깜짝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엄마인 나는 오랫동안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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