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가족 중 두 사람이 보름 간격으로 소문을 물고 왔다. 사십대와 이십대, 나이와 활동 영역이 다른 두 사람이 엇비슷한 이야기를 공유하게 된 건 에스엔에스(SNS) 때문인 듯하다.
한 젊은 엄마가 아이와 함께 공원의 공중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잠깐 문 밖에 세워둔 아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반쯤 혼이 나간 엄마의 눈에 웬 노인이 손주를 업고 가는 것이 보였다. 옷차림도 다르고 바리캉으로 민 듯 머리카락도 짧았지만 딱 자신의 아이만했다. 아이는 곯아떨어진 듯했다. 문득 아이의 신발을 보았는데 모양이 특이해서 사준 자신의 아이 신발과 똑같았다. 부리나케 달려가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았는데 세상에 바로 자신의 아이였다.
이 부분에서 이구동성 탄성이 터졌다. 간발의 차로 잃을 뻔한 아이의 얼굴에 내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물론 요즘 떠돌고 있는 근거 없는 소문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꼭 있었을 법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1959년에도 괴소문은 있었다. 상경한 어머니는 그 얼마 전 서울을 한차례 휩쓴 소문에 대해 들었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소문이었다. 소문도 들어오지 못할 심심산골, 아무것도 몰랐던 어머니는 소문이라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괴소문에 이왕 죽을 거 여한 없이 먹고 마시다가 죽겠다고 작정한 청년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다. 청년은 동네의 구멍가게에 큰 빚을 졌고 그 어머니가 외상 빚을 갚는 내내 온갖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1990년대는 단연 ‘홍콩 할매’였다. 고양이를 데리고 여행 가던 할머니가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 고양이와 할머니의 모습을 반반 섞은 홍콩 할매가 귀갓길 아이들 앞에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에 아이들의 귀가 시간이 빨라지기도 했다. “귀신은 하나도 안 무섭다. 젤로 무서운 건 사람이다, 사람.” 그 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달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괴담의 주인공이 귀신에서 사람으로 바뀌었다. 희대의 사건 주인공들이 괴담에 등장했다. 가까스로 사고를 모면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돌아다녔다.
최초의 야담집으로 전해지는 <어우야담>은 임진왜란 후에 쓰였다. 7년이나 계속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미처 거두지 못한 시신들이 들판에 널려 있었다. 전염병이 창궐했다. 달밤이면 백골들이 하얀 꽃처럼 피어올랐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이라고 나을 것도 없었다. 민심이 피폐해지고 괴담이 떠돌았다. 그런데도 지배 계층은 나 몰라라 당파 싸움만 했다.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몇몇 귀신은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구천을 떠도는 원귀들이었다. 기록 끝에는 꼭 그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의 이름이 달려 사실처럼 믿게 했다.
문제는 괴소문이 날로 흉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육 매매에서 장기 적출 괴담까지, 실제로 만취해 택시를 탄 한 승객은 인신매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달리던 택시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귀신보다도 무섭다는 것이 사람이니, 우리는 이제 위안을 얻을 데도 없다. 택시에서, 휴게소 공중화장실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는 일단 곁의 사람들을 의심하고 본다.
한 전문가의 말처럼 사회에 불안을 야기하고 특정 대상에 미움을 가진 이들이 괴담을 퍼뜨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우야담의 ‘어우’는 유몽인의 호 ‘어우당’에서 따온 것으로, ‘어우’란 쓸데없는 뭇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한다는 <장자>의 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비꼬았다.
일련의 사건들에서 우리는 치안 부재를 목격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빈부 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괜찮은 걸까? 괜찮은 걸까? 불안이 불안을 낳는다. 위안받을 곳 없다. 그러니 불안한 이들이 꾸는 악몽이다, 이 괴담과 괴소문들은.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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