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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땅거미

등록 2013-06-30 19:22

올해 태양이 가장 높게 뜬 순간은 지난 6월21일 낮 2시4분께였다. 낮 길이가 가장 긴 하지의 한때였다. 여름 기운 짙어지는 칠월에 접어들면서 더위가 깊어간다. 한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낮 길이는 한겨울 동지까지 짧아진다. 해넘이가 빨라지면 어스름이 찾아오는 때도 빨라진다. 황혼이 깃들고 땅거미 지는 시간이 일러지는 것이다. 황혼은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또는 그때의 어스름한 빛’이고, 땅거미는 ‘해가 진 뒤 어스레한 상태. 또는 그런 때’이니 비슷한 표현이지만 말맛은 조금 다르다. ‘빛’(황혼)과 ‘그림자’(땅거미), 어느 쪽을 보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옅은 밤’인 박야(薄夜), ‘저녁 그늘’인 석음(夕陰), ‘어스레한 낮’의 뜻인 훈일(曛日)도 사전에 올라 있지만 죽은말(死語)에 가깝다.

해거름 무렵 드리워지는 ‘땅거미’는 노래와 시에 잦게 등장한다. 노래로 불리고 시어로 살아 있는 ‘땅거미’가 나오는 곡은 얼마나 될까. ‘땅거미’를 노래한 이는 많았다. 같은 곡이어도 부르는 가수, 편곡이 다른 경우까지 따져보니 132곡이었다. 한명훈·이범용(‘꿈의 대화’), 이선희(‘영’, ‘혼자된 사랑’), 남궁옥분(‘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김승진(‘스잔’)의 것처럼 귀에 익은 노래는 물론 그 옛날 배호(‘먼 여로’)의 곡도 있었다. 얼마 전 타계한 이종환(‘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의 시 낭송을 포함해 발음은 하나같이 [땅꺼미]였다. 에스지 워너비(‘꿈의 대화’ 아르앤비 솔(R&B Soul) 버전)는 [땅·거미]라 했지만 유의미하지 않았다. 어쿠스틱 버전에서는 [땅꺼미]로 했으니 악센트 때문이었기에 그렇다. [땅꺼미]는 ‘땅거밋과의 거미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땅에 사는 거미’를 가리킨다. 사전은 황혼녘의 ‘땅거미’ 발음을 [땅거미]로 제시하고 있다. [땅꺼미]가 대세인 현실 발음과 다른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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