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그를 처음 만난 게 1980년 초, 내가 인천의 변두리, 한국화약 공장이 있는 고잔동 성당에 초임 발령을 받고 부임한 때였습니다. 그는 같은 또래의 두세 사람과 함께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구멍가게에 걸터앉아서 새벽부터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생면부지의 그를 만나려고 며칠을 수소문한 끝에 얻은 성과였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약속이나 한 듯 그를 빼고는 고잔을 말하지 말라니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무척 궁금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때만 해도 그나 나나 술이라면 한가락 한다고 자부하는 터였으니 우리는 쉽게 가까워졌습니다.
그는 홀로된 어머니와 노쇠한 할머니까지 한집에 모신 여덟 식구의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네에서 모범적이고 성실한 청년이라고 칭찬하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확실한 직장도 없는데다 대대로 내려온 농사일에도 열심이지 않았으니 그럴밖에요. 수재만 들어간다는 인천중학교를 졸업했으니 공부를 못한 때문은 아닌 듯합니다. 아마도 남들처럼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악착을 떨지 않고 매사에 큰 욕심이 없는 천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욕심이 없는 것인지 의욕이 없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도 더러는 있었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서 김치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웅덩이를 퍼서 미꾸라지도 잡고 갯가에 망둥이도 잡으러 다녔습니다. 늘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는 태어난 그 땅에서 힘들 것도 바쁠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갑자기 뜻하지 않은 우환이 생깁니다. 흥부 각시 같은 부인이 심장수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수술비가 엄청났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편법을 씁니다. 사장 친구에게 사정해서 건강보험 카드를 만들었는데, 안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가난한 시골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거액을 고스란히 물어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땅을 팔았습니다. 그나마 버텨오던 살림은 급속도로 기울었습니다. 와중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들 시집 장가도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집을 떠나 타향살이에 돌입합니다. 자본도 기술도 없는 그에게 돈벌이는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하는 것마다 잘 안됐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짓던 동생이 앓다가 죽고 부인은 심장병이 재발해서 또 한 차례 큰 수술을 합니다. 그는 급기야 밥보다 더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딱 끊습니다. 와! 그 의지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 아들과 딸의 말과 행동이 이상해지는 겁니다. 둘을 데리고 정신병원을 전전했지만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작년에 그에게 결정적인 재난이 닥칩니다. 위암 진단입니다. 본인은 이쪽, 부인은 저쪽, 자식들은 또 다른 병원에 나뉘어 수용됩니다. 부인이 끝내 운명했다는 전화를 받은 것은 아직 100일이 채 안 된 지난봄이었습니다. 그는 수화기 저편에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부인은 3일장도 못 치르고 바로 화장장으로 직행했습니다. 이유인즉 죽은 아내도 아내지만 아이들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저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자기는 죽지도 못한답니다. 그 쥐구멍에는 볕들 날도 없어 보입니다.
그는 월남전 참전 용사입니다. 고엽제 운운은 약삭빠른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화를 참지 못하고 묻습니다. 사제인 나는 오늘도 심신의 건강과 가정의 화목, 풍족한 재물이 정녕 하늘의 축복이요 은총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까요? 나의 30년 지기 김씨는 평생 하늘의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까? 지금도 여전히 나를 동무로 대해주는 그가 고마울 뿐입니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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