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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1000/60 / 하성란

등록 2013-08-23 18:59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그곳에 방이 있는 줄 몰랐다. 사무실을 빠져나와 잠깐 산책을 하는 뒷골목은 한낮에도 고요했다. 시선이 하늘로 향하기 일쑤여서 눈여겨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곳은 늘 누군가 버린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던 곳인 듯하다.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며 으름장을 놓은 붉은 글씨의 벽보, 아무래도 그곳 담벼락에서 본 듯하다.

요란한 음악 소리가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그냥 스치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치는 길 바로 가까이에 창 두 개가 나 있다. 창은 작지 않지만 창틀이 콘크리트 보도에 턱걸이하듯 걸쳐 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에도 창문 한번 열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낮에도 전등을 켜야 하고 긴 장마에 습기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찼을 방. 창문을 열면 환기는커녕 도로의 먼지와 누군가 버린 쓰레기가 튀어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동안 찾는 이 없어 비워두었을 수도 있다. 전세는 찾아볼 수 없고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전셋값에 덩달아 월세도 올랐으니, 얼마 전에야 세입자가 들어온 건지도 모른다.

홍대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큰길에 젊은 일러스트 작가의 작업실이 있었다. 간판에 ‘1000/60’이라는 숫자가 씌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그 간판이 눈에 띄면 궁금했다. 이 의미심장한 숫자는 무엇일까. 다소 도발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반지하인 작업실의 보증금과 월세라는 것을 알았다. 역시 그답다는 생각도 하고 그의 바람대로 영영 월세가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 간판이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임대료 때문일까, 작가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는 것도 나중에 들었다.

창문도 열 수 없는 길갓집 반지하, 그 방은 얼마일까. 건물 안까지 음악 소리가 따라붙는다. 전자음과 함께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가수가 악을 쓴다. 여기도 사람이 산다고, 누군가에게 알리기라도 하는 듯 음악 소리가 골목에 쩌렁쩌렁 울린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두 남자가 마주앉아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나이 차는 열두어 살. 후배는 또래의 젊은이들과 비슷한 보증금과 월세를 내며 혼자 살고 있다. 1000/60. 여느 젊은이들처럼 부모님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의 사분의 일이 넘는 금액이 월세로 들어간다. 벅차지만 당분간 1000에 60이라는 그 규칙과 그 조건이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 상가 건물 이층이라는데 아랫집에서 대형 가마솥에 무엇을 끓이기라도 하듯 바닥이 너무 뜨겁다고 했다. 언감생심 집을 사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결혼을 하면 전세 대출을 받아 전세로 옮기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대출 이자를 내야 하는데 그것이 월세와 무엇이 다른지 생각 중이다.

제 집이 있는 선배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후배와 달리 그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전세금 흥정을 하고 자주 이사가는 것이 번거롭다며 무리하게 집 장만을 했다. 어느 해 여름 그는 해안가에서 죽은 소라게를 보았다. 커지는 몸집에 좀더 큰 고둥을 찾던 소라게는 마땅한 집을 찾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비틀어진 탄산수 페트병을 집이라 생각하고 자리잡았다가 죽은 듯했다. 평수를 넓혀 이사가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렸다.

그도 매달 융자에 대한 이자를 내고 있다. 이것이 월세와 뭐가 다른지 가끔 혼동이 되지만 그래도 전세로 옮기자는, 지금 제 집을 갖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은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한마디만 더하면 그것 보라고, 전셋값이 오르고 올라 아예 전세를 찾을 수 없지 않으냐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뭔가 이상하다. 뭔가 이상한 여름이 가고 있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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