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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합리적 의심에 관하여 / 김동조

등록 2013-09-16 18:47수정 2013-09-24 11:42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나는 먹고살기에 바빠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든 없든 별 관심이 없다. 검사가 특별히 윤리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혼외 자식의 유무가 한 인간을 평가하는 도덕적 기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검찰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고 보도한 이상, 과연 보도대로 그에게 혼외 아들이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의 배우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아버지로서 부양의 책임을 다했는지 관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검찰총장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검찰총장의 아들이 맞는지 여부에 한정해서 본다면, 조선일보가 제기한 ‘합리적 의심’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우선, 보도 직전 그의 아들로 의심되는 아이가 미국으로 출국했다. 아이 엄마의 해명처럼 유명인이나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자식의 이름을 짓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드물지 않지만, 친부와 성까지 동일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방식은 올바른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평가했을 때 상당한 문제가 있다.

조선일보는 검찰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지만 아이의 부모로 의심되는 당사자들을 인터뷰하지 않았다. 당연히 기사는 조선일보의 일방적인 주장과 단편적인 정황들로 채워졌는데, 그중 일부는 보호자 동의 없이는 얻을 수 없는 아이에 관한 정보였다.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이 따로 있다면 밝혀야 하고 취재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식이 사용되었다면 법적인 책임을 감수하고 사과하는 것이 올바른 보도 태도다. 그리고 아이의 친부가 검찰총장이 아니라는 아이 엄마의 주장에 조선일보는 입증 책임이 검찰총장에게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후 입증 책임을 전가해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보도 방식 역시 올바르지 않다.

법무부의 감찰 발표 이후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이제 자연인 채동욱이 조선일보와 법적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그와 조선일보 간의 법적 공방의 결과와 무관하게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남겼다. 검찰이 국정원 댓글 사건의 혐의자들을 구속하고 기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이 권력을 남용해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선거 정당성을 훼손한 범죄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으로, 이런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검찰로서는 검찰총장의 거취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대검의 감찰과장은 “내 아들딸이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윌 스미스처럼 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사직했다. ‘국가의 적’이라고 번역되는 그 영화는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게 된 변호사 윌 스미스가 정보기관의 불법 감청과 정보 조작 그리고 폭력 때문에 희생되는 이야기다. 대검의 고위 간부가 언론에 정보를 제공한 것이 국정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그가 제기한 ‘합리적 의심’은 검찰총장이 물러날 경우 가장 이익을 보는 것이 현재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국정원이고,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에는 불법적인 방법 혹은 국가기관의 개입 없이는 확보하기 어려운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검찰총장에 대해 제보한 것이 국정원 직원이 맞는다고 해도 제보 행위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론에 대한 제보는 모든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보가 불법적인 방식으로 취득되었다면, 정보 제공자와 정보를 그대로 받아쓴 언론사가 져야 할 법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우리는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합리적 의심’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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