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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보통국가 일본’과는 어떻게 마주할까? / 정남구

등록 2013-09-26 19:06

정남구 도쿄 특파원
정남구 도쿄 특파원
을사년(1905년)의 늑약이 체결된 이듬해 5월 최익현이 전북에서 항일 의병을 일으켰다. 훗날 초대 대법원장을 맡는 김병로는 그때 스무 살이었는데, 포수 5~6명을 이끌고 순창에서 의병대에 합류했던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포군이 6~7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밖에 70~80명의 인사는 아관박대(雅冠博帶: 높은 관과 넓은 띠를 두른 사대부 차림)한 유생이었다.”

이 글을 처음 읽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던 기억이 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달라졌는가. 국제정치에 대해 조금은 더 현실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가.

19세기 후반의 일본을 연상시키는 것은 무리지만,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의 최근 움직임은 꽤 걱정스럽다. 핵탄두 제조에 쓸 수 있는 플루토늄을 30t 이상 보유한 나라, 약간의 기술만 보강하면 어느 때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날릴 수 있는 나라,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갖고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더 많은 방위예산을 쓰는 나라, 그런 일본이 ‘평화주의’의 족쇄를 떼내고 있는 까닭이다.

내년이 되면 아소 다로 부총리가 말한 ‘나치 수법의 조용한 헌법 개정’은 이뤄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헌법 9조를 바꾸는 일은 어렵겠지만, 일본 정부는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힐 것이다. 자위대라는 사실상의 군대를 가진 일본이 이제 전쟁에도 참가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동아시아 안보의 부담을 덜려는 미국의 요청과 승인 아래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의 ‘소극적 평화주의’에서 ‘적극적 평화주의’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일본이 그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즉흥적인 반응이 너무 많다. 일본의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신사에 가서 훈계하겠다는 의원이 나오더니, 이번엔 국내에서 욱일기를 사용하면 처벌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움직임이 있다. 회사 깃발로 욱일기 문양을 쓰는 아사히신문사 서울지국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 등을 부정하는 개인 또는 단체를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자는 의원도 있다. 그러려면 상당수 일본 각료의 입국부터 막아야 할 터이다. 며칠 전 야스쿠니신사에 불을 지르려 했던 한 젊은이와 사고의 깊이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관박대하고 의병에 뛰어든 유생의 모습이 겹친다.

장래에 위험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보다는 ‘보통국가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그것은 역사인식에 관련돼 있으면서, 동시에 한국의 안보에 관련돼 있다. 우리는 일본의 움직임을 막을 외교적 지렛대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시급한 것은 일본의 변화가 한반도의 평화, 대한민국의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먼저 진지하게 분석하는 일이다. 그 바탕 위에서 보통국가로 가려는 일본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고, 필요한 대처를 해야 한다. 한국 정부나 국회가 역사인식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일본과 대결의 선봉대로 나서는 듯한 지금의 모습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일부 일본 지도자들에게 엿보이는 군국주의적 사고는 분명 경계하고 견제해야 한다. 일본 안에 이를 우려하고 견제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 정부나 국회는 한국 시민사회의 평화 세력이 그들과 힘을 합칠 수 있게 길을 내줘야 한다. 일본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대결주의가 아니라 평화주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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