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작가’ 최인호가 별세했다. 지난 수요일의 일이다. 향년 68, 한창나이에 서둘러 떠난 작가. 그의 선종 소식을 들은 날 밤, 보석처럼 빛나던 학창 시절 추억의 여러 조각이 선생이 남긴 작품과 엮여 있음을 새삼 되새긴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날 밤 이후 고인의 작품 세계와 그를 추모하는 글이 각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전해졌다. 그 가운데 어느 일간지에 실린 추모사의 한 대목은 이랬다. “지지난해였네요. 선생님께서 몇몇이 모여 점심 식사라도 하고 싶어 하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 그날이 아니어도 다시 선생님을 뵐 수 있겠지, 여겼습니다.” 면역력 약해진 선생에게 자칫 감기를 옮길까 저어해 선뜻 나설 수 없었던 작가 조경란의 아쉬움이다.
선생을 추모한 글 여럿 가운데 이 글이 유독 관심을 끈 까닭은 ‘지지난해’라는 표현 때문이다. 선생이 별세하기 몇 시간 전, 회의에서 만난 조 작가에게 “‘지지지난호’에 실린 단편 잘 보았다” 인사말 삼아 건넸다. 지난겨울에 나온 문학 계간지 발행 호수를 밝히려 되짚다 나온 표현이었다. ‘지지난’은 ‘지난번의 바로 그 전’이니 ‘지지지난’은 ‘지지난의 바로 그 전’이 된다. ‘지난호의 전전번’인 셈이다. 소설가와 아나운서가 주고받은 표현 ‘지지지난’은 어법에 맞는 것일까.
그날 회의 자리에 함께 있던 국어학자들은 “‘그저께’의 전날로 ‘그끄저께’를 인정하고, ‘다음번의 바로 그 뒤’를 ‘다다음’이라 하니 ‘지지지난’을 틀렸다 할 수 없다” 했다. ‘사전 표제어가 아니면 잘못된 표현’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다음주’가 안 되면 ‘다다음주’, ‘다다다음주’의 일정은?” 하며 약속 잡은 경험이 있다면 이런 설명이 ‘2주 뒤’, ‘3주 뒤’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지지난-지난-지금-다음-다다음(다음다음)’을 뒤와 앞으로 확장해 짚어가는 ‘지지지난’, ‘다다다음’을 올림말이 아니라는 까닭으로 배척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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