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파이트’(dogfight), ‘머니볼’(moneyball), ‘시빌 워’(civil war), ‘시 배틀’(sea battle)…. 영화나 게임 제목이 아니다. 에스케이 와이번스(비룡)와 한화 이글스(독수리)의 대결을 공중전에 비유해 ‘도그파이트’로, 재벌 그룹인 엘지와 삼성의 맞대결은 ‘머니볼’로, 두산과 넥센 서울 팀끼리의 경기는 내전에 빗대어 ‘시빌 워’라 부른 것이다. 항구도시 부산(롯데)과 인천(에스케이)의 팀 싸움을 ‘시 배틀’이라 한 것도 재밌다. ‘용쟁호투’(에스케이-기아), ‘공대육’(空對陸, 에스케이-엔씨)처럼 한자 조어도 빠지지 않는다. 두산(베어스)과 기아(타이거즈)의 대결은 단군신화를 끌어와 ‘단군매치’, 전라도 연고팀(기아)과 경상도 연고팀(엔씨)의 겨룸은 ‘화개장터’로 부르기도 하니 재치 만점인 별칭이다.
막바지까지 상위권 다툼이 치열했던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났다. 엎치락뒤치락 호각지세로 겨루는 판세는 감독들에게는 피 말리는 순간의 연속이었겠지만 팬들에게는 점입가경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가을 야구’를 위해 4강을 놓고 시새우는 형국은 여러 표현으로 다뤄졌다. 각 팀들이 듣기 싫어한 표현은 ‘탈락’, ‘추락’, ‘도전’ 등일 것이고 반긴 것은 ‘진입’, ‘복귀’, ‘탈환’, ‘유지’, ‘수성’, ‘고수’, ‘사수’ 따위일 것이다. 이 가운데 유독 ‘사수’(死守)가 눈에 띄었다.
이 표현이 눈에 띈 까닭은 어감이 전투적이어서만은 아니다. ‘두산과의 승차를 1.5경기로 벌리며 3위를 사수하는 한편…’(ㄷ일보), ‘최종전에 전력을 다해 극적인 2위 사수를 노리게 되었다’(ㅇ인터넷매체), ‘박병호는 2년 연속 홈런왕 타이틀 사수에 나섰다’(ㄴ통신). 박병호에게 홈런왕은 ‘사수’ 대상이 아니었다. 굳이 ‘사수’여야 했을까 싶다. ‘사수’의 남발이 거슬린다. 이런 표현에 쓰인 ‘사수’는 ‘차지한 물건이나 형세 따위를 굳게 지킴’인 ‘고수’라 하는 게 걸맞다. 내일부터 ‘도전’과 ‘수성’이 펼쳐질 ‘가을 야구’가 시작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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