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의 일이다. 라디오 시보 직후 ‘한국적 민주주의 뿌리박자’는 구호를 뉴스 앞에 넣어야 했었다. 일테면 ‘정각 열 시를 알려드립니다’, 뚜뚜뚜 뚜! ‘한국적 민주주의 뿌리박자. 열 시 뉴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오늘…’ 해야 했다는 것이다. 언론 통제가 지엄하던 시절, 어느 날 어느 아나운서가 큰 ‘사고’를 쳤다. 기계적으로 읊어대던 구호를 ‘한국적 민주주의 뿌리 뽑자’로 한 것이다. 정권에 항거하는 듯한 ‘멘트’는 전국에 생방송되었다.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 등을 내세운 ‘유신헌법’은 12월27일에 공포되었다. 그런데 왜 ‘시월유신’일까. “정부는 앞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10·17 특별선언’을 ‘시월유신’으로 통일해서 부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ㄷ일보, 1972년 10월28일) 언론은 ‘10월17일 대통령 특별선언’을 ‘10·17(십일칠) 선언’으로 기록했다. 이처럼 기념일이나 역사적인 날을 숫자로 표현하는 경우는 제법 많다. ‘일이일(1·21) 사태(김신조 사건)’, ‘삼일오(3·15) 부정선거(개표 조작)’, ‘오일륙(5·16) 군사정변’, ‘오일칠(5·17) 쿠데타(내란사건)’, ‘십이륙(10·26) 사건’ 등이다.(위키백과)
역사적인 날을 읽는 방법은 달은 그대로, 날짜는 숫자 하나씩 끊어 발음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관례일 뿐 원칙은 아니다. 순종 장례식 때 일어난 ‘육십(6·10) 만세 운동’과 ‘6월 민주화 운동’의 시작인 ‘육십(6·10) 항쟁’처럼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12월12일에 벌어진 ‘십이십이(12·12) 군사반란(사태)’도 빼놓을 수 없다. “‘십이’가 반복되어 짝을 맞추려는 심리 탓”, “‘시비시비’(是非是非)와 발음이 같아서”라는 주장이 있지만 추정일 뿐이다. 그나저나 ‘자신의 실수를 뉴스 끝낸 뒤까지도 몰랐던’ 그 아나운서는 어찌 되었을까. ‘사고’ 직후 정보당국에 불려갔으나 훈방된 뒤 다른 부서로 옮겼다고 한다. ‘…뿌리 뽑자’가 단순 실수였는지, 전직 사유가 ‘사고’와 직접 관련 있었는지는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