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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청소부와 클린 디자이너 / 법인 스님

등록 2013-10-18 19:04수정 2013-10-23 21:31

법인 해남 일지암 암주
법인 해남 일지암 암주
먼저 내 자랑 하나 해야겠다.

나는 작명을 아주 잘한다. 아이가 자라 부귀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이름을 잘 짓는 것이 아니라 행사나 전시회, 강좌에서 사람의 호기심을 끄는 그런 이름을 좀 짓는다. 내가 사는 절 대흥사의 템플스테이는 ‘새벽 숲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연의 자연에서 인간의 원초적 정신을 깨어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의 음악회는 ‘달이랑 별이랑 사람이랑’이라 지었다. 자연과 음악과 사람이 어울리는 풍경을 담아내려 한 것이다. 조계사의 국화향기 나눔전은 ‘시월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이다. 이는 어느 선시에서 빌려 온 것이다. 이 이름의 뜻은 애써 설명하지 않겠다. 그저 느낌 그대로 음미해 보시기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출가학교의 주제는 ‘내려놓고 바라본다’였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세뇌당한 관습적 사고와 태도를 내던지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크게 보자는 염원에 대한 묵시적 표현이다.

내가 이렇게 화두를 들듯이 이름에 고심하는 건 이름이야말로 곧 의미 지향의 핵심을 말 한마디에 담아내는 선언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이름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길거리의 상호나 단체의 명칭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본다.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톡톡 튀는 이름이 많다. 우리 밀을 재료로 하는 어느 국수가게 이름은 ‘우리면 사무소’이다. 이름과 뜻을 알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수원에서 작은 마을 운동을 하는 지인이 만든 골목잡지 이름은 ‘사이다’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상시키면서 청량한 이미지도 떠올리게 하는 참신한 이름이다. 웃음과 희망을 주려는 작명가의 고심과 마음 씀이 전해져서 흐뭇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러나 더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름도 있다. 서울시청 건너편 옥상 광고에서 보았던가. 대학 홍보 광고인데 ‘취업사관학교 ○○대학’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었다. 대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전당임을 거두어들인 것을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또 겉 이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자신들의 거짓 속내를 감추려고 하는 이름도 있다. 법정스님이 국토에 대한 무례라고 일갈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친환경 물길 잇기’라고 포장했고, 4대강 사업은 ‘행복사강’이라고 속내를 감춘 이름을 달았다.

명실상부! 이름과 내용이 서로 맞아야만 사람이 사람을 믿게 된다. 특히 다양한 홍보기법을 통해 어떤 의도를 달성하려는 현대사회에서 이름과 구호는 이미지와 감성만을 자극할 뿐, 부실하고 불순한 의도를 감추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실소를 자아내는 표지를 보았다. 아마도 책임실명제를 위하여 직원 이름과 사진을 벽에 붙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저는 클린디자이너 ○○○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깨끗한 화장실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청소원이 아닌 클린디자이너!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이러다가 물 따라 구름 따라 떠돌며 참선하는 선승을 젠 마스터라고 이름 붙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청소노동자의 고용을 안정시켜 주고 따뜻한 눈길과 사랑이 오가는 문화를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영어로 이름을 바꾸어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했다는 착시효과를 노리는 어쭙잖은 속셈은 그만두었으면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자꾸 이름과 이미지, 감성으로 대중을 속이고 자본과 권력을 독식하려는 교묘한 의도에 나는 거듭 분노한다.

다시 명실상부를 생각한다. 실이 실다우면 명이 명다울 것이고 실이 실답지 못하면 명이 명답지 못할 것이다.

법인 스님 해남 일지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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