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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검찰총장의 자격은 무엇인가

등록 2013-10-18 19:35수정 2013-10-21 10:21

‘정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검찰총장의 자격이 될 것 인가. 지난 2월7일 열린 ‘검찰총장후보 추천위원회’ 첫회의 장면. 공동취재사진
‘정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검찰총장의 자격이 될 것 인가. 지난 2월7일 열린 ‘검찰총장후보 추천위원회’ 첫회의 장면. 공동취재사진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이르면 다음주 열린다. 대략 24일쯤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구성된 1기 추천위가 첫 전체회의에서 후보 3명을 추천했으니, 이번 2기 추천위도 회의 당일에 바로 후보들을 추천할 것이다. 추천위원 9명은 회의에 앞서 두툼한 책자 10여권을 받게 된다. 인사검증에 동의한 후보자들의 이력과 검증 결과를 한 사람씩 정리한 것이다. 위원들은 이 책을 들춰가며 어떤 사람이 검찰총장의 자격이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형식적인 자격이라면 후보자들 모두 문제가 없다. 다들 검사로서 보낸 기간이 검찰청법에서 검찰총장의 임명 자격으로 정한 ‘경력 15년’을 훌쩍 넘는다. 위원들은 후보자들의 이력에서 다른 자격요건을 더 살펴야 한다. 검찰 사무를 총괄하는 검찰총장으로서, ‘검사들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검찰청법 제4조) 지휘·감독하려면 자신도 그런 흠이 없어야 한다. 정치권력의 요구에 맞춰 수사·기소한 일은 없는지, 비리에 눈감거나 과도하게 검찰권을 행사하진 않았는지, 인권침해 수사에 연루되거나 피의사실 유포 따위 위법을 저지르진 않았는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몸가짐은 바로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 2009년 천성관 당시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자격 미달’이라며 반대한 것도 이런 기준에서였다. 이번에도 그런 자격 미달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이들을 제외하는 게 추천위가 먼저 할 일이다.

원칙은 그러한데, 현실은 또 다르다. 추천위원들은 회의에 앞서 책자 말고 정부의 뜻도 직간접으로 듣게 된다. 1기 추천위 때는 당연직 위원인 법무부 검찰국장이 ‘후보자로 적합하다’며 3명을 제시했다고 한다. 위원들은 이를 밀쳐둔 채 난상토론으로 기준을 정하고 무기명 비밀투표를 해, 다른 명단을 내놓았다. 권력 이동의 미묘한 틈새여서 그런 반전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중도나 진보 성향 인사도 포함됐던 1기에 견줘, 이번 추천위의 면면은 정부·여당과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 보인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이었거나 총리 후보로 꼽혔던 이, 극우 논객이 비당연직 위원으로 들어 있다. 위원장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법무장관과 검찰국장을 지낼 때 가까이서 보좌한 인연이 있다. 김 실장은 지금 누구보다 강한 장악력을 지닌 실세로 꼽히는 터다. 서슬 퍼런 취임 1년차 새 정부는 인사의 취향도 분명하다. 이제 비로소 ‘박근혜 정부가 지명하는 총장’을 뽑게 됐으니 어떤 식으로든 그 뜻은 추천위에 전달될 것이다.

그 뜻은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아도 짐작할 만하다. 채동욱 전 총장은 혼외아들 논란으로 사퇴했지만, 일이 여기까지 이른 데는 정치권력의 이해에 어긋난 검찰 수사가 배경이 됐다고 봐야 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함으로써 대통령 선거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한 것이 그것이다. 이쯤 되면 새 총장의 자격은,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말 잘 듣는’, 혹은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이 된다.

검찰 처지에선 필요한 자격요건이 다를 수 있다. ‘채동욱 사태’는 검찰총장조차도 사찰과 공작의 대상이 되고, 또 자칫하면 비참하게 쫓겨난다는 생생한 사례다. ‘말 안 들으면 당한다’는 본보기일 수 있으니, 검찰 전체가 순치의 대상이 된 셈이다. 이대로라면 과거 수십 년 동안 빠졌던 질곡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해방 직후 기개 넘쳤던 검찰은, 제2대 김익진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측근을 기소했다가 고검장으로 강등되고 엉뚱한 혐의로 구속까지 된 이후 급격하게 꺾였다. 그런 역사의 되풀이를 막으려면, 검찰총장은 ‘방파제’여야 한다. 그마저도 지금은 사치라면 산산조각난 검찰의 자존심을 추스르고, 갈가리 찢긴 검찰 내부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추천위는 그런 고민을 품을 수 있을까. 그조차도 이제 헛된 꿈이 아닐까.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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