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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삶과 죽음의 법칙: 찬수형과 상욱이

등록 2013-10-21 18:42수정 2013-10-21 20:38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예상할 수 있거나 없거나. 죽음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1. 같은 장례식장에서 찬수형을 한 달 사이 두 번 만났다. 첫 번째는 찬수형 가족이 세상을 떠나서. 두 번째는 찬수형이 떠나서. 몇년 전 위암 초기 수술을 받았지만 건강하고 밥도 잘 먹던 찬수형은 밤에 응급실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혼수상태가 되었다. 병원으로 달려가 찬수형을 본 지 몇분 만에 형의 발바닥을 만지며 의사의 사망선고를 들어야 했다. 가족은 물론 찬수형도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회 보좌관 생활을 오래 한 뒤, 박근혜 대통령 캠프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던 형은 선거가 끝나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이었다. 형이 웃을 때면 소리 없이 꽃이 피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선거가 끝나고 난 형에게 축하한다고 저녁을 샀다.

2. 대학 동창이던 상욱이를 페이스북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상욱이는 싱가포르에서 살며 영화평론을 하고 있었다. 학교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는데, 페이스북을 통해 때론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욱이가 한국에 나온다고 연락이 왔다. 폐암을 선고받고 투병을 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고 의사의 권유로 치료를 중단하고 서울에서 3개월 정도 남은 삶을 정리하러 나왔다고 했다. 상욱이는 집으로 가까이 지내던 몇 사람을 초대해 자신의 영화평론집 <익스트림 시네 다이어리> 출판 기념회를 했다. 책에서 ‘살고 싶다’고 했던 상욱이는 이 책 출판 뒤 두 달이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 잭 런던은 ‘자연이 생에 부여한 단 하나의 법칙이 바로 죽음’이라고 했다. 가깝던 두 사람이 각각 50대와 40대에 떠나는 모습을 보며,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자연사이건 불치병 선고를 받건 예상할 수 있는 죽음이거나 혹은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사이에 찾아오는 예기치 못한 죽음. 죽음에는 이 두 가지가 있었다.

삶의 법칙이 죽음이라면 죽음의 법칙은 무엇일까? 죽음을 예상할 수 있다고 딱히 좋은 것도 없다. 예상할 수 없는 죽음이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 누구도 자신이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혹은 예상치 못하게 접할지 알 수 없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잘 보낸 하루 후에 편안한 잠이 찾아오듯, 잘 보낸 삶 후에는 차분한 죽음이 찾아온다.” 죽음의 법칙이란 결국 삶이고, 죽음의 기술은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와 연결이 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하면서 나는 이기적이게도 내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삶은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삶 속에서 어떤 직책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내 평생을 바칠만한 일(業)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가 아니라 넓은 세상을 경험했는지, 나와 별 상관없는 먼 사람들에게 피상적으로 어떻게 기억되는가가 아닌, 나를 잘 아는 소수의 가까운 사람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낀다. 영국의 수필가 윌리엄 해즐릿은 말했다. “아마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최고의 치료법은 삶에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점을 떠올려 보는 것”일 것이라고. 맞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오늘’만이 있다. 오늘 저녁 편한 마음으로 잘 수 있도록 하루를 보낸다면, 그것이 진정한 삶의 법칙이자 죽음의 법칙을 살아내는 기술이리라. 돈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만, 삶은 오늘을 위해 써야 하지 않을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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