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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1985년 그 사고로부터 / 하성란

등록 2013-10-25 18:37수정 2013-10-25 18:38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기억의 한 토막이다. 교탁 앞에 서 있던 선생님이 수업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의 여객기가 추락해 수많은 승객이 사망했다, 얼마 뒤 항공사 대표가 속죄의 뜻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다음에 이어진 선생님의 말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뻔뻔하게 살아 얼굴을 들고 다니는 이들에 대한 지탄이었는데, 그것이 구체적인 인물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그 시대를 통틀어 이야기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오랫동안 속죄의 의미로 제 목숨을 끊은 항공사 대표가 떠올랐다. 꽤 충격을 받았던 듯하다. 극단적인 방법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목숨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그를 그렇게 강렬하게 기억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면 자연스럽게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일본 항공사의 대표가 떠올랐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그런 죽음이 많았다. 크고 작은 비리 끝에는 꼭 누군가의 죽음이 따라붙었다. 때로는 속죄의 의미였고 때로는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죽음이었다. 때로는 살아남아 받게 될 사회적인 지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진실이 묻힐 때도 있었다. 그 어떤 경우든 죽음으로 모든 것이 일단락되었다.

한 토막으로 남아 있던 기억에 구체성을 실어준 것은 인터넷이었다. 검색 결과대로라면 중학교 무렵이라고 생각했던 때로부터 몇 년 뒤인 고등학교 때이다. 1985년 그날 그 사고로 오백명이 넘는 승객과 승무원이 사망했다. 선생님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그 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항공사의 대표가 아니라 그 여객기의 수리를 맡았던 정비사였다.

그 당시 일을 곰곰이 떠올려 보게 되었다. 조금씩 교실 풍경이 떠오르고 선생님의 얼굴도 떠오른다. 무언가에 덴 듯한 표정이다. 대체 어떤 마음이어야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것일까, 짐작할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떴을 것이다. 그리고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던 그날 일이 떠오른다. 나는 아주 잠깐 일본의 우익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를 떠올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대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미시마 유키오는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만 해도 목숨을 끊은 이를 항공사 대표로 알고 있었다. 사고로 실추된 명예에 대해 기업의 대표로 생각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죽음으로 지켜야 할 명예. 제도적으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시대 사람들에게 사상으로 남아 있었을 할복문화. 죄의식과 속죄, 명예 등이 뒤섞였을 그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이다.

요즘 두 가지 사건에서 불쑥 그 항공사 대표가 떠올랐다. 잘못된 정보는 쉽게 바로잡아지지 않아 여전히 그때 목숨을 끊은 이는 내 기억 속에서 그 사람으로 남아 있다. 밀양의 송전탑 현장을 방송사의 카메라가 잡았다. 여든 가까운 한 노인이 자신이 가진 것은 목숨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름 잡힌 앙상한 두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그들이 가진 마지막 것을 주저하지 않고 내놓을 것이다.

그런데 왜 후쿠시마산 문어를 시식하고 있는 일본 총리의 사진에서 난데없이 그 사고가 떠오른 것일까. 피폭되어 사람이 사라진 일본의 유령마을이 떠올랐다. 세간을 챙길 틈 없이 그들은 고향을 등졌다. 그들은 일본 전역으로 흩어져 난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총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 문어를 먹었다. 총리의 과장된 그 모습에서 할복을 하던 미시마 유키오의 무모함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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