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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양심이 불가능한 사회

등록 2013-10-29 19:09수정 2013-10-30 10:01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나는 오슬로국립대학교에서 ‘한국 종교와 철학’ 수업을 한 지 벌써 12년이나 되었다. 그 수업을 하면서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요즘 한국 철학의 주된 화두를 이야기해달라”와 같은 학생들의 질문이다. 그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의 현재적 현실을 화두로 삼는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웬만한 유럽 국가 이상으로 헤겔과 칸트 전문가들이 많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겪어온 권위주의적 ‘근대화’와 오로지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위해주는 ‘기업국가’ 형성, 외환위기 이후의 사회의 원자화와 개인의 고립, 세계 최악의 자살률 등은 거의 철학의 화두가 되지 못한 듯하다. ‘씨알 철학’으로 인간을 말살하는 ‘근대’에 맞선 함석헌이나 학벌사회에서 개인다운 개인의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김상봉과 같은 예외들이 있지만, 우리 철학은 현실과 한참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정부가 전교조에 요구한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동료를 배신하라’는 것이었다. 시국선언에 본인의 양심이 명하는 대로 서명했거나 학생 인권을 지키다가 교단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버리면 실리를 놓고 교섭할 수 있게 해준다는 어법이었다. 바로 나 본인의 양심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보통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들이 취하는 정책들의 철학적 함의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최근 정책만 봐도 정말 철학자야말로 먼저 나서서 분석해야 할 부분이 있는 듯하다. 예컨대 해직자들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바꾸지 않으려는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격하시킨 노조탄압책을 보자. 정부가-해고자를 당연히 조합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무시하면서까지-전교조에 요구한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동료를 배신하라’는 것이었다. 시국선언에 본인의 양심이 명하는 대로 서명했거나 학생 인권을 지키다가 교단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버리면 실리를 놓고 교섭할 수 있게 해준다, 곧 명분을 버리면 이득을 안겨주겠다는 어법이었다.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가 곤란에 처하게 된 동료를 버린다는 것은 바로 나 본인의 양심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정부가 학생들에게 양심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에게 원한 것은 바로 스스로가 양심을 포기했다는 선언이었다. 정부의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징계들을 남발하면서 양심을 짓밟는 탄압을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계속해 나갈 셈이다.

박근혜 개인의 전교조에 대한 인식은 8년 전에 사학법 개정 반대 집회에서 그가 내뱉은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 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곧 사학법이 개정되면 “노무현 정권과 전교조가 사학들을 접수해나갈 것이다.” 이것이었다. ‘제거 대상’이 될 반대자를 ‘해충’에 빗대는 것은 유대인들을 ‘해충’이라고 불렀던 파시스트들에게 배웠겠지만, 누가 봐도 그의 ‘전교조 공포증’(?)은 과장되기 짝이 없다. 전교조의 전국 평균 가입률은 20% 정도이며, 보수적인 교총에 비해 인적 규모는 거의 3배나 적다. 참고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자면, 전교조와 흡사한 진보적 성격의 일본교직원조합의 전국 가입률은 약 28%이며, 미국 같은 경우에는 교육 부문 전체에서의 조합 가입률은 35%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들먹이지만, 복지의 모범국인 스웨덴은 교사 사회의 노조 가입률이 80%를 넘는다. 그러니까 전교조는 “사학들을 접수할” 정도의 힘을 보유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는 다른 나라들의 교원 조합에 비해 힘이 약하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 박근혜가 문재인 후보를 향해서 “이념 교육으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교조”와 “유대관계”가 있다고 추궁했지만, 내가 만난 전교조 교사들의 이념지형은 박근혜 추종세력에 비해서는 훨씬 다양했다. 소수는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을 보였지만, 다수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미지를 내비치곤 했다. 이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박근혜가 광적인 증오심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전교조를 그토록 증오하는 한국의 지배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용어 중의 하나이며,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도 계속 나오는 용어는 바로 ‘조직’이다. ‘조직생활’, ‘조직문화’, ‘조직의 요구’…. 그들이 이야기하는 ‘조직’은 바로 개개인의 몰개체화를 의미하며, ‘양심’의 반대편에 선다.

이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양심’의 문제다. 조합의 힘이나 조합원 각자의 이념적 지향과 무관하게, 한국 교직사회에서 전교조는 ‘양심’을 대표한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한국적 교육체제의 특징인 고질적인 사학 비리에 맞서왔고, 또 촌지와 같은 악질적 관행의 근절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들 중에서는 상당수는 체벌과 같은, 병영사회의 학교들에서 체질화된 억압과 하급자의 인격말살에 저항해오거나 비판적이었다. 또 그들은 수업하면서 교과서에서 나온 이야기에다 감히(?) 자신의 의견까지 표현하려 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개체가 필요할 때에 전체에 맞설 수 있고, 맞서는 과정에서 다른 개체들과 연대할 수 있고, 또 행동이나 생각의 차원에서 늘 전체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언행을 통해서 보여 줘온 것이다. 바로 그러기에-그들의 ‘이념’이 온건 자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그들은 체제의 차원에서 위험천만한 조직이다. 이 체제가 그 특성상 병리적인 전체와 다른 그 어떤 개체의 움직임도, 힘과 돈에 대한 숭배와 다른 그 어떤 개체의 생각도 용인할 여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체제와 개인의 양심은 사실상 양립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한국에서 약간이라도 ‘출세’하자면 어디까지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은 지난 10월14일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다. 삼성의 임원세미나 자료로 판단되는 이 문건에서 그 임원들의 가장 중요한 급선무로 거론되는 것은 바로 “문제 인력 밀착관리 강화 및 감축”이다. “문제 인력”은 과연 누구인가? 삼성어(語)에서 일반적인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이들은 ‘친사’(어용) 노조가 아닌 진짜 노조를 설립하려는, 자신들의 당연한-대한민국 헌법에서도 다 보장된-권리를 주장하려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회사의 충견이 해야 할 일은? 일차적으로는 수시로 감시하면서 “유사시 징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이외에는 물론 “비노조 교육”, 곧 노동자들에게 어떤 자율적 조직이나 권리주장이 불필요하다는 전체주의적 세뇌 등도 회사 ‘마름’들의 몫일 것이다. 헌법이나 노동 관련 법률로 보든 단순한 인간 상식으로 보든 이와 같은 행동은 파렴치한 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이와 같은 명령들을 충실히 실행하려는 ‘인력’들은 도대체 어떤 인격 교육을 받았으며 자연스럽게 일어날 양심의 가책을 어떤 방식으로 원천 봉쇄시키는가? 그들에게 보편적 가치에 의거한 개개인의 자율적 판단으로서의 ‘양심’이란 존재하는가? 일제 말기 ‘순량한 황민’들과 유형적으로 다를 게 없는 이와 같은 인간들을 대량생산하는 데에 모든 ‘방해요소’를 제거시키는 것은 바로 전교조 탄압의 진정한 이유는 아니었을까?

인간 ‘양심’의 감성적 기반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타자 고통에 대한 즉흥적인,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동감 같은 것이다. 삼성과 같은 이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들의 입장에서는, “양심이라는 허상”(히틀러)을 뒷받침하는 이와 같은 감성을 둔화시키는 것은 급선무일 것이다. 그러기에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은 잔혹성과 냉소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문건의 텍스트에서는 수십명의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앞으로 또 수십, 수백명의 희생자를 낼지도 모를 삼성전자 백혈병 사망사고 문제는 단지 “이슈화”가 되어서 ‘회사이미지 관리’에 어려움을 줄 수 있는 ‘악재’ 정도로 다루어진다.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동감은 물론이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전교조가 그 자리를 비운 학교들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문건들을 읽어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자신의 ‘성공’과 돈만을 의식할 줄 아는 냉혈한들을 키우려는 게 아닌가?

전교조를 그토록 증오하는 한국의 지배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용어 중의 하나이며,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도 계속 나오는 용어는 바로 ‘조직’이다. ‘조직생활’, ‘조직문화’, ‘조직의 요구’…. 철학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조직’은 바로 개개인의 몰(沒)개체화를 의미하며, ‘양심’의 반대편에 선다. ‘양심’이 개인 각자의 보편적 가치에 의거한 자율적 판단을 의미하는가 하면 ‘조직’은 ‘전체’를 가장한 자본이나 국가의 특수이익, 그리고 그 이익에 수지계산을 맞춘 각자의 ‘실익’에 의거한 명령이나 강압적 분위기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연 전체주의적 색깔이 농후한 ‘조직’만이 있고 ‘양심’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싶은 것인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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